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금 매입을 재개한다. 올해 2분기 소규모 금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를 시작한 데 이어 국내에서 생산돼 해외로 수출되는 금을 직접 사들이는 새로운 매입 채널도 구축했다. 지정학적 위험이 상시화하는 가운데 다른 나라 중앙은행보다 낮은 금 보유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행보다.
한국은행은 3일 국내 생산 금 매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 금 생산업체와 한국거래소(KRX), 한국예탁결제원(KSD)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매입 경로를 다변화하고 금 보관 장소도 분산한다는 계획이다.
한은이 사들이는 것은 국내 시장에 공급되는 금이 아니라 국내 업체가 해외로 수출하려던 물량이다. 금 생산업체가 거래 가능한 물량과 희망 시기를 제시하면 한은이 금 운용계획과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매입 여부를 결정한다. 가격은 국제 금 시세를 기준으로 한다.
국내에서는 LS MnM과 고려아연이 구리와 아연 등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금을 생산하고 있다. 두 회사의 연간 금 생산량은 2023~2025년 기준 약 40~45톤, 이 가운데 해외 수출 물량은 대략 4~5톤 수준이다.
거래에는 KRX 금시장과 KSD의 결제·보관 인프라가 활용된다. 다만 일반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장내 일반매매가 아니라 매수·매도자가 가격과 수량을 미리 정하는 협의대량매매 방식으로 거래한다. 해외로 나갈 물량을 사들이는 데다 장내 호가에도 주문이 나타나지 않아 국내 금 수급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실제 첫 매입 시점과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KSD가 금 보관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데다 생산업체의 수출 계획과 국내외 금 가격 차이, 한은의 운용계획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간 매입 목표나 중장기적인 금 보유 목표 비중도 현재로서는 정하지 않았다.
이번 조치는 한은이 장기간 유지해 온 금 운용 전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한은은 그동안 금이 이자나 배당이 발생하지 않는 무수익 자산이고 주식 등에 비해 수익률이 낮다는 점을 들어 추가 매입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지정학적 위험이 상시화하면서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각국 중앙은행의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의 금 보유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점 등을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생산 금을 사들이면 원화로 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국제 금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반영된 국내 가격으로 생산업체와 직접 거래하기 때문에 한은이 금을 사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별도로 달러를 조달할 필요가 없다. 한은은 특히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자국 통화로 금을 매입할 수 있다는 점이 위험 분산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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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이미 올해 2분기 소규모 금 ETF 매입도 시작했다. 금에 대한 투자로 보면 13년 만의 첫 매입이다. 다만 ETF는 실물 금이 아니라 유가증권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 통계상 금 보유액이나 금 비중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한은은 ETF가 실물 금보다 신속하게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 매입 사실이 시장에 노출되는 정도가 낮다는 점을 고려해 매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조석방 한은 외자운용원 운용기획부장은 "이번 조치는 기존 해외 금 매입 방식 외에 금 매입 채널을 다변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금 보관 장소를 국내외로 분산해 지정학적 위험을 낮추고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