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한마디에도 깊은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인기리에 끝난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로 '대세 배우'로 떠오른 최영준은 지난 삶의 낙차 큰 파고만큼 노련함이 느껴졌다. 진중하지만 유쾌하게 얹어내는 특유의 화법은 마주하는 이의 시선을 확실하게 잡아끌었다.
지난 2002년 보컬그룹 세븐데이즈의 리더로 데뷔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오랜 무명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는 첫 주연 타이틀을 단 '우리들의 블루스'로 호평 받으며 배우 인생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SBS '왜 오수재인가', 넷플릭스 '안나라수마나라' 등에도 출연하며 관심과 비례한 다작 행보까지 펼치고 있다. 최근 인기와 관심에 들뜰 법도 하지만 20여 년차 베테랑답게 겸허한 마음으로 앞으로를 내다보고 있다. 드라마 종방 직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영준은 자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안하고 촬영했어요. 늘 하던대로 연기했죠. 사실 작품의 주인공이 되면 뭘 더 해야하나 막연한 고민을 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우리들의 블루스'는 참 감사한 작품이고 새로 사귄 친구라고 생각해요. 제 연기 인생에 있어 신의 한수죠. 저라는 배우가 가는 행보에 있어서 다른 삶을 살게 해줬어요. 대중교통을 좋아해서 지하철을 지금도 타는데 마스크를 써도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식당을 가도 서비스로 사이다라도 하나 더 주시곤 해요. 이제 좀 연예인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각양각색 인생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드라마다. 최영준은 극중 시장에서 얼음을 파는 제주 토박이 호식을 연기했다. 한때 도박에 빠져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아내가 야반도주해 홀로 딸을 키우게 되면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인물이다. '딸바보'지만 무조건적인 다정함보다는 바닷사람 특유의 '츤데레' 면모가 다분했다. 딸과의 애틋함, 친구 인권(박지환)과의 티키타카로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이병헌, 차승원, 엄정화, 한지민, 신민아, 김우빈 등 톱배우들이 총출동한 이 드라마에서 연기력 하나로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

"원래 호식 역할을 다른 선배 연기자가 하기로 했었는데 일정이 안돼서 공석이 됐어요. 그 자리에 제가 오디션을 보러 간 거였죠. 운명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 감독님과 미팅을 한 후에 노희경 작가님과 같이 보자고 해서 두 차례에 걸쳐 미팅을 했죠. 감독님과 작가님을 함께 만난 미팅에 박지환 배우도 있었어요. 그날 처음 만난 사이였는데 10초 만에 통성명만 하고 (대본 리딩 때문에) 욕을 해야했죠. 되게 좋아하셨어요."
운명처럼 다가온 호식이란 커다란 기회를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매력적인 인물로 빚어냈다. 인물의 삶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자 했고, 혼자만의 생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감독과도 끊임없이 대화했다. 이해가 되지 않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으면 반드시 이해의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캐릭터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그는 호식을 뜨겁게 사랑했고, 그 사랑이 제것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간이에요. 도박도 했잖아요. 되게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좀 생각을 달리하며 희망을 본 건 개과천선했다는 점이었죠. 도박에 빠진 사람이 재생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호식이는 어떤 계기든 간에 다시 일어나 살잖아요. 그러한 전개가 희망으로 다가와서 인물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남자 혼자서 딸 혼자 키우는 게 얼마나 짠해요. 딸이 생리를 안 한다고 하니 주스를 사다먹이잖아요. 그 서투름이 오히려 더 짠하고 사랑스러웠어요. 당연히 제가 연기하는 인물들을 사랑해야죠.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해야 해요. '이 장면에서 어떻게 연기하면 멋있어 보일 수 있을까'가 아닌 최대한 납득되어지는 만큼만 하려고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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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써서인지 실물은 이지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풍겨나왔다. 극중에서 촌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구수한 인상이 강했던 것과 대비되며 비주얼 자체에도 참 공을 들였겠다 싶었다. 호식은 애매한 길이의 짧은 반바지에 형광색 옷을 자주 입고 등장했다. 마치 만물상 동석(이병헌)에게 산 저렴한 옷들 같지만 실제론 비싼 옷들이란다.
"처음에 의상 피팅을 하기 위해 박지환 배우랑 감독님하고 만났어요. 박지환 배우는 그냥 아무 옷이나 갖다 붙여도 찰떡이었어요. 피팅 두 어벌 만에 끝났죠. 그런데 전 뭘 입어도 이전 이미지와 겹치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이 축구 유니폼을 구안해냈죠. 유니폼을 입으니까 괜찮더라고요. 형광색을 즐겨 입은 것도 감독님 아이디어예요. 그리고 제가 입은 옷 중에 싼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군복 조끼도 비쌌고, 신발도 비싼거였어요."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화법을 칭찬하자 그는 "20대 중후반에는 완전 송곳이었다"고 털어놨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며 살았고, 때문에 겪은 것들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변화의 지점이 찾아왔고,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며 끝까지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대 때는 싫은 이야기 다 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뒤를 봤더니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때 '바른 소리한다고 해서 내가 바른사람이 되는 게 아니구나'를 느꼈죠. 일이 끊기고 설자리가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연판에 12년 있으면서 10개 작품을 했어요. 일년에 반은 논 거죠. 그럼에도 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어요. 공연을 당장 하지 않아도 다른 작품도 정말 많이 보고 캐릭터를 연구하고 언제든 닥치면 연기할 수 있도록 준비를 나름대로 했죠."
가수를 했던 과거 이력도 최영준이란 배우에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활동이 잘 풀리지 않아 해체된 거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다음 행보가 왜 배우였는지가 궁금해졌다.
"가수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3분 슬퍼하기 곡'을 만들어야 했던 거였어요. 이게 진짜 힘들더라고요. 무대 아래에서 웃다가 마이크를 잡으면 갑자기 슬픈 감정들을 3분 만에 몰아쳐야 되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가짜처럼 다가와서 더 이상 가수는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연기는 중학생 때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 속 한석규 선배의 연기를 보며 막연하게 동경했어요. 가수를 그만두니 그때의 감정이 솟구치더라고요. 그래서 뮤지컬 오디션을 봤는데 30번이나 떨어졌어요. 그런 과정을 겪고 28살에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됐죠."
최영준은 현재 차기작도 열심히 촬영하고 있고 다양한 작품 제의도 쏟아지고 있는 상황. 호식을 통해 보다 배역의 폼이 커진 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보가 필요하다. 그는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나아가게 될까?
"하던 대로 연기하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건 생각하고 있어요. 들어오는 역할도 달라지고 있고요. 그간 제가 연기하며 쌓아온 필모그래피지만 톤을 많이 억누르고 해왔다면 이젠 좀 더 저를 표출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다작보단 선택과 집중을 해야할 때 같아요. 공들여서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