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황병국 감독 "클럽 단체 마약신, 실제는 영화보다 더해" [인터뷰]

'야당' 황병국 감독 "클럽 단체 마약신, 실제는 영화보다 더해" [인터뷰]

한수진 ize 기자
2025.04.09 08:00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4년 만의 복귀. 황병국 감독에게 '야당'은 단순한 차기작이 아닌 묵묵히 쌓아온 시간의 총체였다. 세 번의 좌절을 지나 다시 메가폰을 든 그는 “이번엔 정말 모든 걸 쏟아야 했다”고 말한다. 황 감독은 세 번의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난 후 영화 제작사 대표에게 건네받은 신문 기사에서 야당이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됐고, 곧바로 이 모호하고도 낯선 존재에 자신의 창작 욕망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정치 용어로도 오인할 수 있는 ‘야당’이라는 영화 제목은 마약 세계에서 수사기관의 브로커 임무를 수행하며 이익을 취하는 마약범을 뜻하는 은어를 일컫는다. 작품은 대한민국 마약 판을 설계하는 브로커 야당,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검사, 마약 범죄 소탕에 모든 것을 건 형사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엮이며 서사를 펼치는 범죄 액션물이다.

“'특수본' 이후 연출작이 세상에 나오는 건 14년 만이지만 사실 작품을 계속 준비하고 있었어요. 세 작품을 준비했는데 무산됐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있더라고요. 그러다 영화 제작사 김원국 대표에게 전달받은 마약 관련 기사로 야당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 기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공백이 길었던 만큼 현장에 대한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끼면서 시나리오를 써나갔죠.”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황 감독은 야당이라는 소재를 마주하고 방대한 양의 자료 조사에 착수했다. 종사자들도 만났다. 실제 형사들과 접촉했고, 야당으로 활동했던 인물과도 만났다. 그런 과정을 거쳐 등장인물의 대다수를 실존 인물에서 출발한 캐릭터로 재구성했다. 마약반 형사 오상재(박해준)와 부패한 검사 구관희(유해진), 그리고 마약 브로커 이강수(강하늘). 세 사람은 실제 사건과 취재에서 길어낸 현실성과 영화적 허구가 절묘하게 뒤섞인 존재다.

“강하늘 배우가 연기한 야당도 제가 만났던 분 중에서 착안해 캐릭터를 만들었고, 오상재 형사도 그랬어요. 제가 인터뷰 한 형사 중에 두 분이 실제로 야당한테 당해서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무죄 받고 나오신 분이 계셨어요. 구관희도 몇몇 검사를 엮어 만든 인물이고 강력한 대권 후보자 아들인 조훈(류경수)과 그들의 카르텔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여배우 엄수진(채원빈)도 그렇고요.“

황 감독이 ‘야당’을 연출하면서 가장 중시한 건 시나리오 장악력이었다. 그는 감독의 첫 번째 책임이 대본을 완벽히 해석하고, 배우와 스태프가 의심 없이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촬영 현장은 감독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데 그 시작은 시나리오입니다. 배우들이 가끔 툭툭 질문을 던지는데, 그때 제대로 대답을 못 하면 그 현장은 끝나는 거예요. 저는 시나리오 안의 모든 걸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현장 연출에서도 황 감독은 배우 출신 감독다운 디테일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연기를 준비해 오는 배우들의 감각을 존중하되, 명확한 디렉션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방식을 택한다.

“배우가 헤매지 않도록 정확하게 길을 제시해 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게 최대한 집중해서 갈 수 있도록 디렉션을 주려고 해요. 배우로서 촬영 후 만족하지 못하면 드는 찜찜한 기분을 잘 아니까 가능하면 후회 없이 촬영장을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게 제 목표였죠.”

그는 강하늘, 유해진, 박해준이라는 배우들과의 협업을 통해 ‘야당’ 특유의 속도감 있는 리듬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세 배우는 각기 다른 연기 스타일을 지녔지만 황 감독의 연출 아래 자연스럽게 하나의 호흡을 만들어갔다.

“강하늘 배우는 복원력이 정말 뛰어난 배우예요. 제가 디렉션을 주면 ‘잠깐만요’ 하고 생각하더니 금방 수정해서 본인의 걸로 만들어내요. 유해진 배우는 현장에서 앉아 있지도 않고 계속 대사를 걸어 다니면서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요. 박해준 배우는 기본적으로 연출가의 자질이 있는 배우입니다. 제가 동선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공간을 읽고 동선을 만들어줬던 경우도 있었어요.”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야당’만의 리듬감은 편집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황 감독은 “모든 장면의 열고 닫는 부분을 과감히 덜어냈다”고 밝혔다. 화면 전환마다 집중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작품에서 신을 열고 닫는 기본적인 형식이 있잖아요. 근데 관객들이 극장에서 핸드폰을 보는 것도 그 신이 열리고 닫힐 때더라고요. 그래서 열고 닫는 그 틈을 다 잘라버렸어요. 모든 장면은 바로 시작하고 바로 끝나요. 그 편집을 13개월 동안 했어요. 그게 이 영화의 포인트는 아니지만 차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은 마약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소재를 관통하는 인물의 관계성이다. 황병국 감독은 이야기의 중심을 예측불가능한 선택의 순간에 뒀다. 각 인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것으로 어떤 예상치 못한 전환을 맞는지가 ‘야당’의 핵심이다.

“이강수와 구관희는 초반에 형제처럼 지내다가, 어느 순간 복수의 상대로 전환되잖아요. 또 원수와도 같던 오상재와 이강수는 나중에 뜻을 함께하게 되고요. 이 구조가 재미있는 이유는 관객이 다음 장면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제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들도 이런 구조예요. 계속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지점이요. ‘야당’도 그 방식으로 설계했습니다.”

때문에 황 감독은 이 작품을 단순한 사회고발로만 읽히는 데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메시지는 분명 존재하지만, 오락적 리듬이 먼저 깔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2시간 내내 메시지만 주입하면 관객들이 지루해한다. 영화는 일종의 어린아이들이 먹는 과당이 들어간 약이다. 재미 속에서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황 감독의 말대로 상업 영화인 ‘야당’은 재미와 자극이 우선시되긴 하지만, 그 기저에는 사회고발 메시지도 분명히 있는 작품이다. ‘야당’을 준비하며 방대한 양의 마약 자료를 보게 된 황 감독은 실제 마약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뼈아프게 느꼈다.

“마약 사범이 1만 6천 명에서 이제는 2만 8천 명까지 늘어났어요. 암수를 포함하면 거의 50만에 육박하죠. 그런데 여전히 대한민국의 마약 정책은 투약자를 무조건 잡아넣는 데 집중돼 있어요. 저는 오히려 판매, 제작자는 강하게 처벌하고, 투약자는 치료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황병국 감독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런 문제의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낸 장면이 바로 영화 속 클럽에서의 단체 마약 복용 신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가장 충격적인 신이기도 하다. 적나라한 난교 장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점이자 모든 파국의 출발점인 이 장면은 황 감독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면서도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이었다.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는 모든 분들은 실제 무용가들을 동원했고, 할리우드에 도입돼 있는 무브먼트 디렉터라고 독일 현대무용 연출자를 초빙해 동선을 잡았어요. 너무 자극적일까 고민도 많았지만 마약이 가진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경각심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신이 약하면 전체 이야기가 설득력을 잃어요. 마약 취재하면서 너무도 잔혹한 장면을 많이 봤어요. 실제는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아요.”

황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마약은 대부분 자발이 아닌 관계를 통해 유입된다. 저도 담배를 주변의 권유로 시작했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그게 우리 주변에 없어서 멀게 느껴지는 것뿐이지, 절대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야당’이라는 제목에서 정치적 함의를 떠올릴 수 있고, 마약을 다뤘다고 해서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를 상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황병국 감독은 그런 선입견을 부수며 장르적 재미와 현실적 메시지를 동시에 껴안은 영화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가 ‘야당’을 소개하는 마지막 한 마디는 이 영화가 지닌 정체성과 에너지를 압축한다.

“‘야당’은 정치 영화가 아닙니다. 기존의 영화처럼 마약물이라고 해서 어둡지도 않습니다. 속도감 있고 통쾌한 리듬이 있는 범죄 액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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