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존을 위한 한 남자의 투쟁, 그리고 조선 민초들의 질긴 애환을 그린 ‘탁류’가 글로벌 OTT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를 타고 베일을 벗었다. 추장민 감독의 연출과 천성일 작가의 필력이 만난, 검증된 인물들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플랫폼과 만난 한국 사극이라는 점에서 ‘탁류’는 하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한편으로 꼽혀왔다.
조선 후기 상업의 중심 경강(京江)을 배경으로 한 사극 누아르 ‘탁류’는 한강 일대 그 중에서도 마포나루를 누비는 왈패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권력집단의 위세에 눌려 강 주변부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하층민들의 세계를 비춘다는 점에서 ‘탁류’는 천성일 작가의 ‘추노’를 연상케한다. 여기에 주먹 하나로 거친 삶을 살아가는 왈패들을 코믹하게 그려낸 지점은 ‘해적’과도 닮아있다. 보리쌀 한 되에 목숨을 거는 가난한 서민과 왈패, 상단 상인, 관리들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와 지배구도를 그리며 작품 초반부는 점차 서사의 밀도를 높여가고 있다.

극의 중심인 장시율(로운)은 출사의 길이 막혀 좌절하고 신분을 숨기며 떠돌다 왈패가 된 사내다. 꿈과 신분, 가족을 잃고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던 그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왈패들의 세계에 들어섰다. 남루하고 헤진 옷을 걸치고 덥수룩한 수염으로 수려한 외모를 감췄지만, 무리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장한 체격과 숨길 수 없는 눈빛으로 그의 범상치않을 미래를 예고한다.
신예은이 맡은 최은은 큰 상단의 딸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스로 상인의 길을 걷는 당찬 여성이다. 여자라는 점 때문에 마뜩치않아 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타고난 총명함을 무기로 상단을 이끈다. 기존 사극에서의 수동적인 여성이 아닌 당당하고 입체적인 인물로, 장시율과 함께 극의 축을 담당한다. 두 주연 배우 모두 첫 사극 연기에 도전해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신선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3화까지 공개된 ‘탁류’는 작품 초반, 각 인물의 과거와 현재가 응축된 단서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앞으로 전개될 서사에서는 이들의 관계가 진전하면서 균열과 이해관계, 권력 집단의 억압 그리고 저항이 인물들 각자의 동기와 감정을 타고 발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추창민의 연출 미학, 천성일의 서사 문법, 젊은 두 배우의 캐릭터 해석이라는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한 걸을 더 나아간 사극의 매력을 선보인다.
‘탁류’가 지니는 가장 큰 기대 요소는 OTT 플랫폼 특유의 제작 유연성과 결합된 서사의 밀도다. 방송국 편성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환경은 서사 전개의 완급, 인물의 성장선, 복합 서브 라인을 더욱 풍성하고 정교하게 구축하기 적합하다. ’탁류’는 초반부터 빠른 전개와 감칠맛 나는 조연들의 연기, 사극 미쟝센, 선명한 시대상으로 시청자를 몰입시켰다.

향후 ‘탁류’의 순항을 위해서는 인물의 서사적 동력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장치되는가, 그리고 폭력과 정의의 긴장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흥미롭게 견인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탁하고 거친 강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생존의 서사에서 더 나아가 조선의 시대상과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밀도깊게 그려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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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에서 사극, 스릴러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추창민 감독은 글로벌 플랫폼과 시리즈라는 환경과 만나 ‘탁류’를 통해 사극의 시야를 확장했다. 그리고 더욱 풍성하고 방대해진 이야기의 서두를 매력적으로 조율하며 우리 사극의 진화를 예고하고 있다.
정명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