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이 원더가 될 때까지…‘신인감독 김연경’ [예능 뜯어보기]

언더독이 원더가 될 때까지…‘신인감독 김연경’ [예능 뜯어보기]

조이음(칼럼니스트) 기자
2025.10.08 08:00

김연경의 우당탕퉁탕 감독 입문기...제8구단 창단 성공할까?

'사진='신인감독 김연경' 방송 영상 캡처
'사진='신인감독 김연경' 방송 영상 캡처

그동안의 배구는 잊어라, 김연경 감독의 새 배구가 도래했나니.

2024-2025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난 ‘배구황제’ 김연경이 MBC 새 예능 ‘신인감독 김연경’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8일 첫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김연경이 신생 배구팀 ‘필승 원더독스’를 창단해 ‘프로 8구단 창설’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1회 2.2%, 2회 4.0%(닐슨코리아 제공,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탄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스포츠 예능을 넘어 한국 배구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지난 시즌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5번째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고 정규리그와 챔프전 MVP를 독식한 김연경의 은퇴는 배구계 최대 이슈였다. 그가 지도자의 길을 택할지, 방송으로 방향을 돌릴지에 대한 관심도 컸다. 이미 김연경은 ‘나 혼자 산다’ ‘놀면 뭐하니?’ 등을 통해 예능감을 입증했고, 서장훈 안정환처럼 레전드 선수에서 방송인으로 변신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연경은 모두의 예상을 비틀었다. 배구를 놓지 않으면서도 배구계의 현실을 바꾸겠다는 목표로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택했다. 한국 배구의 구조적 문제를 예능이라는 무대로 끌어올린, 전략적 선언이었다.

사진='신인감독 김연경' 방송 영상 캡처
사진='신인감독 김연경' 방송 영상 캡처

김연경은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2부 리그가 없는 종목이 배구”라는 지적으로 프로그램의 출발점을 밝힌다. 주전 경쟁에서 밀린 선수는 곧장 방출되고, 실업팀은 전국에 네 곳뿐이다. 김연경은 이런 구조 속에 묻힌 선수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자 ‘필승 원더독스’를 만들었다.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 실업팀에서 기회를 노리는 선수, 은퇴 후 복귀한 이들이 한데 모였다. “이들을 구제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배구 생태계를 재정비하겠다는 의지다.

스포츠 예능의 공통된 키워드는 ‘도전’과 ‘성장’이다. JTBC ‘뭉쳐야 찬다’가 인간미와 웃음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었다면, ‘최강야구’는 냉정한 프로 시스템을 도입해 현실성을 높였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이 두 프로그램의 장점을 흡수하면서도 독자적인 색을 보여준다. 예능의 유연함 속에서도 리그 시스템과 계약 구조, 감독 리더십 같은 프로의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김연경의 리더십이 있다. 선수들의 반복된 실수에 “생각하는 배구를 해” “개판 오 분 전”이라며 호통치는 냉철한 감독이지만 자신을 향한 전문가들의 평가엔 “가짜 지도자 맞다. 방송은 안 껴주나 보다”라며 웃는다. 냉정함과 유머를 오가며 프로그램에 리듬을 부여하는 그의 존재는 ‘예능화된 배구’가 아닌 ‘배구를 담은 예능’을 가능케 한다. 여기에 20년 차 배구 팬으로 잘 알려진 세븐틴 부승관의 합류는 프로그램의 윤활유로 작용한다. 국가대표가 아니고서는 이름조차 모르는 현실과 달리 선수들의 면면을 이미 잘 아는 배구 찐 팬 부승관은 김연경과 선수들 사이의 온도 차를 부드럽게 조율하며 완충 역할을 한다. 예능적 활력을 더하면서도 배구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그의 태도는 프로그램에 활력을 더한다.

사진='신인감독 김연경' 방송 영상 캡처
사진='신인감독 김연경' 방송 영상 캡처

‘필승 원더독스’는 이름처럼 언더독의 상징이다. 표승주 이나연 김나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백업을 전전하다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으로 방출된 선수, 프로 문턱에서 좌절한 선수들이다. 전문가들은 냉정한 등급 평가를 내리고 “승률 50%도 어렵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 팀은 첫 경기부터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이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에 맞섰다. 세터 교체와 전술 전환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끈 김연경은 “승리했지만 경기력은 애매했다. 이 상태라면 100% 진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승리의 기쁨보다 발전의 방향을 먼저 짚는 태도는 선수 시절의 승부 본능이 감독으로 옮겨온 순간이었다. 이어진 IBK기업은행전에서도 베테랑 김호철 감독과 맞붙어 빠른 교체와 전술 조정으로 팀을 이끌었다. 예능을 위해 탄생한 ‘명목상 감독’이 아닌 ‘현장형 리더’ 김연경의 가능성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총 7경기 중 과반 승리를 달성하지 못하면 팀은 해체된다. 냉혹한 조건 같지만 이는 곧 스포츠의 현실이다.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결과로 증명해야만 살아남는다. 때문에 김연경이 과거 리그 최하위 팀들을 우승으로 이끌어온 ‘언더독 전문가’였다는 사실은 이 프로젝트에 설득력을 더한다. 흥국생명, 일본 JT 마블러스, 튀르키예 엑자시바시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그의 이력이, 예능에서도 또 한 번 재현되고 있다.

‘신인감독 김연경’의 최종 목표는 프로 8구단 창단이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목표지만 이미 이 프로그램은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배구를 전면에 내세운 첫 스포츠 예능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방출 선수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배구계의 구조적 불균형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설령 창단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원더독스에서 프로 재입단 선수가 탄생한다면 그 자체로 성공이다.

김연경의 이번 도전을 두고 “좋은 선수가 좋은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다”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아직 그가 선수 시절의 명성에 걸맞은 감독인지는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분명한 건 배구를 향한 그의 진심이 예능이라는 무대를 통해 한층 더 깊게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웃음과 감동, 긴장과 카타르시스를 절묘하게 버무린 이 프로그램은 김연경과 함께 한국 배구의 내일을 고민하게 만든다. 언더독이 원더가 되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지만 김연경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매주 일요일 밤, 우리는 한 레전드가 써 내려가는 또 하나의 역사를 목격하고 있다.

조이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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