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성장에 드리운 대중적 거리감 [뉴트랙 쿨리뷰]

있지, 성장에 드리운 대중적 거리감 [뉴트랙 쿨리뷰]

한수진 기자
2025.11.11 15:58
있지 /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있지 / 사진=JYP엔터테인먼트

걸그룹 있지(ITZY)는 늘 자기 확신으로 음률을 채워온 팀이다. 데뷔곡 '달라달라'를 시작으로 '워너비' '마피아' '로꼬'를 거치며 박력 있는 음악색을 구축해 온 이들은 JYP엔터테인먼트가 내세운 '걸크러시'의 가장 구체적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 확신에 지나치게 골몰한 시점부터 있지의 음악은 청자에게 다가오기보다 점점 설명돼야 하는 음악이 됐다.

최근 발매한 새 미니앨범 '터널 비전(TUNNEL VISION)'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앨범은 '몰입'을 키워드로 감각의 폭주와 차단이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자아를 찾는다는 서사다. 자아의 해체와 재건이라는 메시지를 관통하지만, 그 구조가 지나치게 개념적이다. '나'를 말하는 있지는 어느새 감정이 아닌 개념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팀이 된 듯한 모습이다.

앨범명과 동명의 타이틀 곡 '터널 비전'은 에미넴과 리한나의 앨범에 참여한 프로듀서 뎀 조인트와 라이언 전이 작업했다. 묵직한 힙합 비트 위로 브라스가 터지고 레이어드된 보컬이 공간감을 확장한다. 사운드의 구조는 견고하다. 하지만 정서는 평이하다. 절제와 긴장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뭔가 콕 찌르는 정점이 없다.

있지 /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있지 / 사진=JYP엔터테인먼트

가사는 "Focus on my level up / I got tunnel vision(내 수준을 높이는 데 집중해 / 난 터널 비전에 빠졌어)"이라는 후렴구처럼 성장과 몰입의 의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메시지는 익숙하다. "Nothing’s gonna put me off / I know what the hell I want(아무것도 날 막을 순 없어 /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난 정확히 알아)"에서도 특유의 강단은 여전하다. 하지만 사운드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 그 결과 반복된 자기 암시에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

예지의 "폭발 직전의 긴장감"이라는 말처럼 '터널 비전'은 그 직전의 압력만을 유지할 뿐 끝내 터지지 않는다. 사운드의 질감은 세밀하고 감각은 정돈돼 있지만 전개는 지나치게 안전하다. 곡의 완성도도 높은 편이지만 귀나 마음을 움직이는 체온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지나치게 세련된 감각이나 실험성에 집중하려다보니 귀를 명료하게 붙드는 대중성을 놓친 것이다.

수록곡은 타이틀의 아쉬움을 다소 상쇄한다. '포커스'는 앨범의 선두에서 멤버들의 몰입과 방향을 옹글게 붙들고 'DYT'는 당당한 태도를 되새기며 있지의 본래 에너지를 되살린다. '플리커'는 불확실한 순간을 밝히는 낙관으로 앨범의 긴장을 완화한다. '녹턴'은 어둠 속 자각의 순간을 포착해 정서적 깊이를 더하고, '에잇 비트 하트'는 일렉트로 하이퍼팝을 말랑한 질감으로 풀어내 '터널 비전'의 개념적 밀도를 잘 조율한다.

있지 /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있지 / 사진=JYP엔터테인먼트

멤버들의 진심은 분명하다. 예지는 "이번 앨범은 꿈 같다"고 말했고, 류진은 "도달점"이라 정의했다. 채령은 "목표에 집중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모두 지금의 있지를 정확히 요약한 말이기도 하다. 다만 그 진심이 곡에서 느껴지기보다는 인터뷰에서 해석돼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

있지는 여전히 실력 있고 음악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 다만 그 성장의 방향이 대중의 감각과 얼마나 교차하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터널 비전'은 실험적 사운드와 개념(메시지)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지만, 정작 있지가 처음 세상에 내던졌던 직관적인 에너지는 이 앨범 안에서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한솥밥 식구 엔믹스가 '블루 밸런타인'으로 실험과 감정의 균형점을 찾아내 대중의 사랑을 얻어냈듯, 있지에게도 지금 대중과 다시 연결되는 재전환점이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