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하는 걸 계속 잘한다는 건, 결국 스스로를 계속 갱신한다는 뜻이다.
MBC 금토드라마 '판사 이한영'(극본 김광민, 연출 이재진 박미연)에서 지성은 또 한 번 장르물의 중심에 섰다. 그는 익숙한 장르의 문법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도 그 문법이 인물을 납작하게 만들지 않도록 디테일을 더해온 배우다. 그래서 지성이 장르물에 강하다는 평은 칭찬이면서 동시에 이 배우의 작업 방식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지성의 최근 필모그래피는 잘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걸 변주해 온 것에 가깝다. '커넥션'에서는 마약에 강제로 중독된 마약팀 에이스 형사로 출발해 수사극의 추진력을 몸으로 밀어붙였다. '아다마스'에서는 1인 2역을 통해 추리소설 작가와 검사라는 서로 다른 윤리와 온도를 한 몸에 담아냈다. '악마판사'의 의뭉스러움과 폭발력, '피고인'의 누명과 생존, '킬미, 힐미'의 다중인격을 오가는 현란한 전환까지. 장르와 설정은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 인물이 처한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그 극단을 납득 가능한 감정선으로 정리해 내는 힘이다.
특히 지성은 유독 법조인 역할에서 정통한 배우로 기억된다. 법정 장면이 가진 리듬을 안다는 의미다. 법정은 말로 싸우는 공간이고 말은 곧 권력이다. 이때 배우가 할 일은 격앙된 감정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문장과 침묵의 비율로 인물의 우위를 설계하는 것이다. 지성은 이 균형을 잘 다룬다. 단호함을 앞세우되 과장하지 않고, 확신을 밀어붙이되 과신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

'판사 이한영'은 이 지점에서 지성의 장점을 정확히 호출한다. 1회가 판사 이한영의 추락을 전면에 세우며 강렬한 시작을 알렸고, 2회는 억울한 누명과 죽음 이후 10년 전으로 회귀한 '인생 2회차'를 본격적으로 가동시켰다. 이 설정은 자칫 단선적 카타르시스로 기울 수 있다. 악인을 벌하고 정의를 세운다는 선언이 커질수록 인물은 기능으로 대체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성이 맡은 이한영은 '정의 구현'이라는 표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무엇을 외면했고, 그 외면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인물로 설계돼 있다. 그래서 이한영의 선택은 통쾌함 이전에 자기반성의 계산을 전제로 한다.
이 드라마에서 지성의 강점은 두 갈래로 드러난다. 하나는 추락의 감정이다. 판사에서 피고인으로 떨어지는 구도는 인물의 자존과 윤리가 한 번에 무너지는 경험이다. 지성은 이 파열을 크게 울린다. 감정을 극단으로 쥔 채 몸의 반응과 시선의 흔들림으로 무너진 시간을 동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회귀 이후의 속도감이다. 같은 얼굴로 다른 생을 산다는 설정에서 중요한 건 이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구별되는가다. 지성은 말의 결을 바꾼다. 주저하던 문장을 끊고 물러서던 호흡을 전진으로 바꾼다. 그 변화가 쌓이면서 이한영은 변화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이 배우의 갱신은 작품 밖 지표에서도 선명하게 확인된다. '판사 이한영'은 첫 회 전국 4.3%로 출발해 2회 4.4%, 3회 5.8%로 상승했고, 4회도 5.8%를 지키며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5회에는 전국 10.0%(를 기록하며 두 자릿수에 안착했고, 6회는 전국 11.0%로 자체 최고치를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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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건 이 성적이 단지 한 작품의 선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10%대 벽을 끝내 넘지 못하며 사실상 '드라마 왕국'이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았던 MBC가, 지성의 등판으로 체면치레하고 흐름을 재정비했다는 의미가 따라붙는다. 결국 시청자들이 다시 금토 밤에 MBC를 켜게 만드는 건 소재나 사건의 속도만이 아니라 그 속도를 견인할 수 있는 '중심 배우'의 설득력이다. 그리고 '판사 이한영'의 지성은 그 설득력을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증명해 낸다.
그래서 '판사 이한영'의 지성은 새 얼굴을 꺼내기보다 기존의 강점을 가장 정확한 자리에서 다시 증명하는 쪽에 가깝다. 잘하는 걸 잘하는 능력은 과거의 성공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같은 칼로 다른 각도의 칼집을 내는 일이다. 지성은 장르물에서 늘 그 일을 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법복이든 죄수복이든 지성이 입는 옷이 아니라 지성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드라마의 중심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