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장항준 VS '휴민트' 류승완, 누가 설극장가 왕이 될 상인가? [탑티어]

'왕사남' 장항준 VS '휴민트' 류승완, 누가 설극장가 왕이 될 상인가? [탑티어]

이설(칼럼니스트) 기자
2026.02.13 11:01

사극과 첩보멜로의 대결....관객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기사 본문]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왼쪽)과 '휴민트'의 류승완 감독. 사진출처=스타뉴스DB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왼쪽)과 '휴민트'의 류승완 감독. 사진출처=스타뉴스DB

이번 설 연휴엔 모처럼 한국영화들의 피 튀기는 흥행 경쟁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장 관객이 확 줄어들면서 명절 대목에도 볼 만한 한국영화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엔 감독의 이름값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영화 2편이 개봉했다. 바로 장항준 감독의 사극 ‘왕과 사는 남자’와 류승완 감독의 액션멜로 ‘휴민트’다.

‘왕과 사는 남자’와 '휴민트'는 지난 이틀간 1, 2위 자리를 엎치락 뒤치락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휴민트'의 개봉 첫날 1위 자리를 빼앗겼던 '왕과 사는 남자'는 하루 만에 전체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두 영화 모두 개봉후 호평이 쏟아지고 있어 설 연휴 이후에도 롱런할 전망이다.

명절을 앞두고 첫 단추를 잘 꿴 두 작품의 흥행 비결은 아무래도 ‘이종결합’에 있는 것 같다. 낯설고 이질적인 장르에 도전했지만 이를 적절하게 버무린 두 감독의 역량을 말한다.

사진제공=쇼박스
사진제공=쇼박스

장항준 감독은 개그맨을 뺨치는 유머와 재치로 잘 알려져 있다. ‘라이터를 켜라’(2002)로 감독 데뷔해 ‘불어라 봄바람’(2003), ‘기억의 밤’(2017), ‘리바운드’(2023) 등 많은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주로 코미디 장르였고, 배우들의 대사 ‘티키타카’가 쫀쫀했다. 하지만 흥행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무게감도 덜했다. 대신 ’톡톡 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이미지가 강렬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꼽 잡는 입담이 그러했고, 특히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은희의 남편으로 소개되며 우스갯소리로 ‘부인 덕을 보는 남자’로 통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선 단단히 칼을 간 듯하다. 장 감독은 특유의 위트를 유지하되 사극의 고유한 엄숙함과 진지함을 유지하고 있다. 평소 자신 있는 코미디에만 머무르지 않고 스릴과 비장미를 섞어냈다. 비운의 왕 단종의 마지막을 다룬 만큼 애잔한 분위기를 기본적으로 배경에 깔았다. 거의 눈빛만으로 단종의 절망과 비애를 드러낸 박지훈, 엄흥도로서 희비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해진의 브로맨스로 진실함과 친근함까지 붙였다.

장 감독의 장기가 빛나는 몇몇 대목들이 있다. 초반 엄흥도가 산속에서 호랑이에 쫓기다 우연히 찾아간 마을에서다. 전형적인 오지 산골이지만 유배당한 양반을 잘 유치하는 바람에 부자가 됐다는 사연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촌장 안재홍의 능청스러움과 어리둥절한 엄흥도 유해진의 콤비 플레이가 처음부터 웃음을 팍팍 터뜨린다. 다소 과장스럽지 않나 싶지만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강력한 빌런인 한명회(유지태)의 등장 이후로는 긴장감도 팽팽하다. 수많은 고민의 시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장 감독은 "처음 사극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원래 남들이 하는 건 안 하는 성격이고 그래서 오히려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항상 (이번이) 유작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한다. 이번에도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라고 말했다.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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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은 액션 장인이다. 국내에서 첩보, 액션 장르에서 류 감독을 빼곤 다른 사람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는 류 감독표 ‘날것 액션’의 시작점이다. 홍콩 누아르의 근사한 총격전이나, 리롄제(이연걸)류의 합이 잘 짜인 것 같은 무술 액션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툴고, 거칠고, 투박하지만 날 것처럼 신선하고 짜릿한 리얼 싸움이 있다. 류 감독은 직접 형사 석환 역까지 맡아 맨몸 액션 연기를 소화했다. 그만큼 데뷔 때부터 액션에 관한 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말이다. 이후 그의 액션은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주먹이 운다’(2005), ‘짝패’(2006), ‘부당거래’(2010) ‘베테랑’(2015)으로 계속 이어졌다. 여전히 특유의 거친 질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유머를 첨가한 장면들이 많아졌다. 특히 ‘베테랑’ 등에서 보이는 ‘엣지 임팩트’(모서리 부분에 부딪치는 액션)는 류 감독만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아 묵직한 타격감과 함께 웃음도 장착했다.

‘베를린’(2013)과 ‘모가디슈’(2021)로 가면서는 첩보와 스릴을 더욱 강화시켰다. 경쾌한 액션만큼이나 촘촘한 스릴러 구조로 오락과 반전의 묘미를 보여줬다.

그러나 ‘휴민트’는 그동안의 류 감독 작품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장점인 액션을 베이스로 깔되, 그 위에 멜로의 향기를 덧입혔다. 이른바 액션멜로다.

두 남자 주인공 조인성과 박정민이 부딪치는 장면에선 타격감이 2배로 상승한다. 긴 팔다리를 이용해 상대를 순식간에 제압하는 국정원 조과장 역의 조인성, 그리고 북한 보위부의 스페셜리스트 박건 역의 박정민은 이전 작품의 날 것 액션을 잘 계승하면서도 더 빠르고, 강하고, 정교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북한 식당 여종업원 채선화 역의 신세경과 박정민 사이의 멜로 라인이다. 류 감독의 전작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치다. 류 감독은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에 꽤 공을 들였다. 전체 러닝타임 119분 중 상당한 시간이 두 사람의 연인 관계에 할애돼 있다. 그래서 액션 일변도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당황할 수도 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첩보전에서 난데없는 순애보라니… 그러나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법. 신세경과 박정민의 멜로 라인이 강조되는 이유는 영화의 중반을 넘어 엔딩으로 치달으면서 분명해진다. 두 남자가 왜 그렇게 목숨까지 걸고 신세경을 구해내려 하는지가 설득력 있게 드러난다.

장 감독과 류 감독은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다소 위험하더라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 도전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는 걸 몸소 입증했다. 이번에도 그 결과가 설 연휴 동안 다시 한번 구체화될 것이다. 이제 시작이지만 조짐은 나쁘지 않다. 한국영화 가뭄 속에서 모처럼 만에 활력이 꿈틀댄다. 누가 아나, 1000만 영화가 나올지.

이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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