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건설엔지니어가 바라본 '공사비거품론'

[기고]건설엔지니어가 바라본 '공사비거품론'

강태경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공학박사)
2007.03.12 08:33

로마의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가 저술한 '건축십서(建築十書)'를 보면 이오니아의 고대도시 에페수스(Ephesus)의 공공 건설공사비와 건설엔지니어의 책임 규정이 소개돼 있다.

에페수스에서 공공 건설공사를 맡은 엔지니어는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저당잡혀야 한다. 공사 착수단계에서 엔지니어가 추정한 공사비는 준공때까지 투입된 공사비와 비교해 상.벌의 근거로 활용된다.

엔지니어가 당초 추정한 금액과 실제 공사비가 같으면 포상이 주어진다. 예산증액 분이 공사 착수전 추정예산의 4분의1 미만이면 그만큼을 시 재정에서 지급하고 엔지니어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증액분이 추정예산의 4분의1 이상일 때는 저당잡힌 엔지니어의 사유재산에서 예산 증액분을 공제한다. 공사비 증액규모가 추정예산의 절반을 넘으면 공사를 중단하고 엔지니어의 자격도 박탈한다.

비트루비우스는 에페수스의 규정을 벤치마킹해 로마에서는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 건설공사에도 이같은 제도를 도입할 것을 로마의 황제에게 권유하고 있다.

예로부터 공사비 예측 능력은 건설엔지니어가 갖춰야 할 중요한 소양이었고 해도 다음과 같은 반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과연 엔지니어의 책임한계는 어디까지여야 할까.'

최근 이른바 '개발오적론'이 회자된다. 부패한 정치권이나 관료, 일부 언론, 어용학자 (연구자)와 결탁, 특혜를 누리는 건설업체가 비판의 대상이다.

물론 기술개발을 위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건설엔지니어'들은 오적론에 포함안된다. 그러나 건설엔지니어들이 소속된 집단인 건설회사에 대한 공격은 결과적으로 건설엔지니어들에 대한 공격과 다름없다.

공공건설공사에서 부풀려진 공사비가 분양가를 높이고, 이는 곧 국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공사비 거품론' 역시 마찬가지다. 예산 낭비를 막자는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설엔지니어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고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측면에서는 공사비 거품론도 비판의 소지가 있다.

공사비 거품론은 공공기관이 사전에 예측한 공사비와 계약된 공사비 간의 차액이 거품이라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재정 집행은 계약된 공사비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혹시라도 이 차액이 거품이 아니라 수급 불균형에 따른 덤핑(dumping)은 아닐까? 덤핑의 폐혜는 당장 드러나지 않지만 품질을 떨어뜨린다. 싸고 좋은 물건은 많지않은 것은 공사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아파트 고분양가 논란이 뜨겁다. 판교 중.대형 아파트의 분양가격인 평당 1800만원 중 공사비는 5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자재를 사고 사람도 써야 하고 장비도 빌리고 남는 돈은 건설업계가 취하는 이윤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아파트 분양가격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개발이익 분배와 투기, 금융 및 세제, 기반시설 분담체계, 용적율과 녹지비율 등 주거환경, 수급문제, 심지어 교육환경 문제 등이 얽혀있다. 어느 한 부분이 해결된다고 해서 분양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건설업계가 책임의 총대를 메고 있다.

고분양가 문제는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당연히 동의한다. 마녀사냥 식으로 건설업계가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3'을 정상가격의 몇배를 주고도 구입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많고 삼성전자의 순익이 수조원에 이른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건설회사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하나.

주택은 공공재의 성격이 훨씬 강하므로 동일한 잣대로 해석하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건설업계도 이윤추구라는 본능에 충실한 기업이라는 것은 이해해 줘야 한다. 비싸도 팔리는데 싸게 팔기란 쉽지 않다.

건설엔지니어들이 만나 주변 눈치를 보면서 늘어놓는 푸념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놓고 보니 변명처럼 보인다. 예산낭비를 걱정하는 시민들, 내집 마련의 소박한 꿈을 위협받고 실의에 빠진 무주택 가장들의 성난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분양가나 공사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건설업계에 대한 압박도 필요하지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시스템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차원의 반론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건설엔지니어들도 내집 마련에 절망하는 한 사람의 가장이고 예산낭비를 걱정하는 평범한 시민사회의 일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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