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적 부풀리기'에 곤욕 치르는 건설업계

[기자수첩]'실적 부풀리기'에 곤욕 치르는 건설업계

송학주 기자
2016.05.18 05:08

"정부가 하도 채근하다 보니 수주할지 말지 결정안 된 프로젝트도 업무협약(MOU)를 맺을 수밖에 없었어요. 일부에선 MOU 맺은 걸 마치 수주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3건 중 1건만 수주해도 대단한 겁니다."

최근 한 건설업체 임원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계기로 '제2의 중동 붐'이 찾아온 것이 아니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지난 4일 박 대통령은 이란에서 '총 371억달러(약 42조원) 규모 인프라 수주 가능성'이란 성과를 갖고 귀국했다. 구두 합의 사업까지 합치면 최대 456억 달러(약 52조원)에 달하는 '수주 잭팟'이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의 수주 성과 의욕이 오히려 국내 기업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계심을 내비치고 있다. 대부분이 구속력 없는 'MOU' 수준이어서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 사업을 따내더라도 수익성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여서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외교 성과로 내세웠지만 저가수주로 난항을 겪고 있는 186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게다가 37년간의 경제 제재로 이란 정부의 재정이 고갈된 데다 공사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자금력이 되는 기업도 많지 않다. 여전히 대내외 정치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사업 수주 후 사업장을 철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은 수치화된 천문학적 사업 규모에 현혹돼 환호성만 지를 때가 아니다. 오히려 왜 이란이 어떤 이익을 바라고 우리를 원하는가를 따져봐야 할 때다.

유대인, 중국인과 함께 세계 3대 상인에 꼽히는 '아라비아상인'을 상대로 돈을 버는 것이 쉬운 일이겠느냐는 게 업계의 공통된 얘기다. 중동은 한때 우리나라에 '오일머니'를 안겨주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업하기 만만치 않은 곳이 됐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도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이 나오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물가가 올라도 공사비는 올려주지 않고 설계를 변경하면서 공사비용이 늘어도 부담을 모두 시공사에 떠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정부는 기업이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멍석'만 잘 깔아주면 된다. 정부가 채근해 '울려 겨자먹기'로 최상이 아닌 조건의 합의각서에 사인을 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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