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윤용로 기업은행장
"우리는 그동안 익숙한 대륙에서 벗어나 미지의 대륙으로 갑니다. 새로운 대륙으로 항해를 하는 것입니다. 지도는 없습니다. 오직 별을 보고 갈 뿐입니다. 그 별은 우리의 고객입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일본 시세이도의 파리 입성기를 소개했다. 시세이도가 일본 조제약국으로 출발해 세계적 화장품 회사로 성장하는데 핵심지표가 고객이었듯 기업은행도 '오직 고객'(Only Customer)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경제관료 가운데 대표적 '금융통'이었던 윤 행장이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지 50여일이 지났다. 취임 당시 직원들에게 구두를 받은 그는 최근 직원들에게 만보기를 선물했다. 증권업 진출, 민영화 등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임직원이 합심해서 뛰어보자는 다짐인 셈이다. 윤 행장을 집무실에서 만나 올해 전략과 과제를 들었다.

―표정이 밝아 보이십니다.
▶구두가 좀 닳았습니다(웃음). 고객 기업을 찾고, 지점도 방문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바쁜 중에도 중소기업 고객들이 기업은행에 갖고 있는 깊은 애정을 느낀 것은 아주 새롭고 가슴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늘 선두권을 지키는 1인당 생산성을 비롯해 우리 직원들의 경쟁력과 뜨거운 열정도 확인했습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민영화 논의가 무성합니다. 이는 빠를수록 좋다고 언급하셨는데.
▶민영화는 크게 2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영업적 측면에서 볼 때 국책은행이다 보니 여러 가지 규제로 시중은행에 비해 제약이 있습니다. 이미 시중은행도 중소기업대출을 취급하고 있어 기업은행도 이들과 똑같이 영업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 기회가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영화가 좀더 빨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지분 매각과 관련된 민영화는 전적으로 주인인 정부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빅뱅크' 논의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은행의 규모가 아니라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라고 봅니다. 뉴욕에는 JP모간, 메릴린치가 있지만 그 옆에 전당포도 있습니다. 금융 선진국에도 전당포를 필요로 하는 고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왜 커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빅뱅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나오는 것같습니다.
―금융분야에서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로벌 은행도 로컬화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로이터가 전문가들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한 '은행의 미래'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무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고객은 좀 더 빠르고 자기 입맞에 맞고 세련된 서비스를 원할 것이다. 고객에게 맞출 수 있는 은행 만이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독자들의 PICK!
―기업은행이 강점을 갖고 있다는 뜻인가요.
▶기업은행은 타깃 고객이 분명합니다. 다른 은행에 비해 거래기업들의 로열티가 강한 편입니다. 물론 이제 은행산업 전반이 '잔치'는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지난 3~4년은 좋은 시절이었지만 앞으로 2~3년간 은행대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기업은행은 로열티 강한 기업고객, 1인당 생산성이 가장 높은 직원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개인고객시장에 승부수를 던지면 분명히 톱은행으로 우뚝 서리라 확신합니다.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시는 경영전략은.
▶중소기업 금융의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개인고객 기반을 넓힐 계획입니다. 또 투자은행(IB)업무와 수익증권, 방카쉬랑스 등 비이자부문의 수익기반을 확대하는 한편 증권사 설립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중소기업 전문 종합금융그룹의 위상을 세우는데 주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고객이 은행의 성공을 위한 핵심이라는 '오직 고객' 정신으로 무장해 고객에게 친구로 인정받는 은행이 될 것입니다.

―최근 중소기업대출의 부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연체율이 조금 상승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원래 가계대출보다 중소기업대출의 부실화율이 높은 편입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대출 비율이 80% 정도인데, 이 비율이 절반 수준인 시중은행보다 부실 위험은 큽니다. 다른 은행들도 중소기업대출을 2006년부터 늘리기 시작해 곧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기업은행에서 조금 먼저 드러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앞으로 연체관리를 더욱 철저히 할 계획입니다.
―중소기업대출을 줄이실 계획인가요.
▶기업은행은 3~4년 전부터 중소기업의 오랜 벗이라 해서 우산론을 제창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뺐지 않고 오히려 내주는 은행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경기에 순응하지 않고 경기가 어려울 때 대출을 늘렸습니다. 지난해 가계대출을 줄이고 중소기업대출에 경쟁적으로 나선 은행들이 올들어 움츠러드는 모습입니다. 이럴 때 기업은행은 원래 제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거래기업도 많고 심사능력이 뛰어나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대해 기업은행에서는 대출할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증권업 진출붐이 일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에 왜 증권사가 필요합니까.
▶기업은행의 주고객은 중소기업입니다. 현재 여신거래 기업이 17만개, 이를 포함해 거래기업은 40만개에 이릅니다. 이들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커나가려면 기업공개(IPO)를 해야 합니다. IPO를 할 수 있는 거래기업이 무려 1180여개에 달합니다. 현재 증권 자회사가 없어 거래기업들이 다른 금융기관을 이용해야 합니다. 또 기업이 커지면 회사채도 발행해야 하고, 인수·합병(M&A) 수요도 있습니다. 앞으로 10년내 가업을 승계하거나 M&A를 해야할 기업고객들이 많습니다. 이들 거래기업의 사정을 잘 아는 기업은행으로서는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증권업에 진출하려는 것입니다.
―보험이나 서민금융업에도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2010년부터 퇴직금이 없어지고 퇴직 연금제가 도입됩니다. 그러면 기업은행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을 들 수 있도록 보험사를 만드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민금융은 자회사로 기은캐피탈이 있으나 아직 이런 업무를 취급하진 않고 있습니다. 다만 중소기업 근로자 중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들에게 소액대출을 할 수 있는지 검토 중입니다.
―지난해 은행들이 자금조달에 애를 먹었습니다. 올해는 어떻습니까.
▶주식시장으로의 자금이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미국에서도 80, 90년대에 나타났습니다. 우리 역시 고객들이 금리에 민감해지면서 은행 예금금리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올해 국내외 주식시장이 지난해만큼 좋지는 못할 것이란 예측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은행이 빼앗긴 고객을 다시 모셔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행 업무에서 창구조달을 더욱 우선시하고 이를 위해 고객의 필요에 부합하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윤용로 행장 약력▲충남 예산 출생(53) ▲중앙고·한국외대 영어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학원 행정학 석사 ▲행시 21회 ▲재정경제원 관세협력과장·소비세제과장·외화자금과장·은행제도과장 ▲금감위 공보관·감독정책2국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금감위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