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열아홉 여고생'의 15년 직장

[기자수첩]'열아홉 여고생'의 15년 직장

배성민 기자
2010.06.07 09:44

열아홉 여고 졸업생은 30대 중반의 아줌마가 됐다. 첫 직장이던 회사를 이직 없이 15년여 동안 다녔다. 하지만 그녀의 회사는 주인이 세 차례, 사명도 두 번 바뀌었다. 금호생명 김영희씨(가명) 얘기다.

동아생명에 입사한 김씨는 첫 월급으로 38만원을 받았다. 여상 우등생으로 은행도 갈 수 있었지만 대기업 계열사가 나아 보였다.

성수대교(동아건설 시공)가 무너진 1994년 전후부터 계열사라 그런지 회사는 별로였고 IMF 위기가 닥치며 더 힘들어졌다. 해약을 요청하는 고객들이 쏟아졌고 본사에 지급을 요청했지만 ‘알아서 감당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영업사원들과 함께 은행에서 돈을 수백만 원 씩 대출받아 대신 메워줬다.

동아생명은 2000년 금호생명이 인수했다. 회사 주인과 사명이 처음으로 바뀐 것이다. 일은 그대로였지만 이때 연봉이 2000만원대로 올랐던 기억이 있다.

2005년에는 경상이익이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로 직원당 수십만원씩 받았던 기억도 이즈음 일이다. 하지만 몇 십만 원을 주면서 회사는 직원들에게 우리사주를 배정했다. 김씨도 '회사가 좋아지는데 괜찮겠지'라며 1000여만원을 대출받아 넣었다.

2009년에도 증자는 한 차례 더 있었다. 들어간 돈은 두 배로 늘었다. 대주주도 함께 증자에 나서 수습이 되는 줄 알았다. 오너 일가가 빠진 건 나중에 알았다.

매달 우리사주 관련 대출 이자로 15만원 가까이 낸다. 회사를 통해 든 보험료도 70만원 가까이 나간다. 월급의 1/3이다.

그 뒤 산업은행 쪽이 주인이 돼 좋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첫 조치는 감자였다. 회사 주식에 들어간 돈 3000여만 원은 1000만 원이 된단다. 몇 년 전 결혼한 남편은 돈을 빼라고 난리다. 부부 싸움도 잦아졌다.

김씨의 아들은 3개월에 14만원짜리 유치원에 다닌다. 은행에 매달 내는 이자보다 꼭 만원이 적다. 어린이날에는 놀이공원이 아닌 아파트 공원에 갔다.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오후 9시에 퇴근하는 김씨에게 회사는 집 같다. 남들에게는 '삼성생명 못지않은 곳에 다닌다'고 자랑하지만 그녀의 속은 오늘도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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