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정치권이 은행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서민금융 지원은 물론 청년 일자리 창출을 두고서다. 표현은 '당부' '요청' 이었지만, 실제는 '주문' '지시'에 가깝다. 사회적 책임을 내세운 정부 여당의 공세에 대기업에 이어 은행권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관련 기사은행권 "서민대출 상품 이어 청년 일자리도 늘린다"
◇지방선거 패배원인= 정부는 그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주요 치적으로 내세웠다. 모범적인 극복에 전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고, 주요 경제지표도 크게 호전됐다. 그럼에도 지방선거 결과는 참패였다. 좋은 경제 성적표에도 불구, 대다수의 국민들은 내수 경기로 성적을 매겼던 것. 정부 관계자는 "금융위기 극복도 모르겠고, 대기업 실적 좋아졌다는데 내 삶은 나아진 게 뭐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진단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 정책 무게를 수출경제에 뒀다. 외환시장 안정이 중요했던 탓에 수출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폈다. 중소기업은 자연스레 소외됐다. 금융권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되자 대기업 실적이 크게 호전됐다.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일부를 제외하곤 은행들 순익도 개선됐다. 대기업들은 좋아졌는데 여당은 선거참패, 서민들 삶은 크게 좋아진 게 없었다.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완만해질 순 있지만, 줄어들 여지는 없다. 경제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집권 후반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각종 정책 추진의 동력이 떨어질 게 자명하다. 그런데 정부 정책의 최대 수혜자였던 대기업 투자는 미미하다. 정부와 여당 내 경제정책이 '서민'으로 돌아서 연일 대기업과 은행권을 압박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위기를 극복했으면 이제 수출 중심에서 내수 쪽으로 정책의 추를 옮겨 분배로 국면전환을 이뤄야 할 시점이 됐다"며 "부자와 서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결고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은행 때리기 왜= 단초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금리 캐피탈' 관련 발언이었다. 반 시장적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당국은 서민들이 캐피탈을 이용한 게 된 되는 은행 책임이 크다고 판단했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은행권은 중기대출을 크게 줄이진 않았다. 정부가 95%까지 보증해 준 덕이 크다. 그런데 서민대출은 많이 줄였다. 이로 인해 신용등급 4~6등급 고객 일부가 카드사(카드론, 현금서비스)나 캐피탈사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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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전 은행들이 취급했던 고객 일부는 카드사나 캐피탈 업체들 입장에선 꽤 괜찮은 고객이었다. 30% 대의 금리를 받으며 이익을 챙겼다. 주력인 자동차 할부금융 보다 돈이 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에서 서민대출을 외면하면서 10~20% 대 금리가 붕 떠버리는 금리 차단 현상이 생겼다"며 "국민 세금으로 위기를 극복한 은행들이 이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은 고신용자 뿐 아니라 저신용자는 물론 저소득층의 예금도 받는다"며 "그런데 신용등급 6등급 이하 고객을 취급 않는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서민금융 지원 근본 대책= 당국의 서민금융 지원 독려는 '햇살론'과 '미소금융'이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 탓도 크다. 정부가 야심작으로 밀고 있는 '햇살론'은 대상자가 1700만 명으로 광범위하다. 그런데 재원이 10조 원에 불과하다. 1년에 2조 원을 써봤자 20만 명만 혜택을 볼 수 있다. 미소금융 역시 10년 간 1조 원을 지원한다. 연평균 1000억 원 지원에 불과하다. 재원은 언제가 바닥을 드러내게 돼 있다.
'햇살론'이 캐피탈 업체 등의 금리 인하 촉매제는 될 수 있지만 서민들의 돈 가뭄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당국이 은행권에 서민 전용 대출상품 개발을 독려한 이유다. 이러지 않고는 서민금융 활성화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당국 관계자는 "서민 전용 상품을 만들어 취급하면 2금융권에서 30~40%대 금리 이용하던 사람들이 은행 대출을 받을 것 아니냐"며 "이제는 은행들이 금리 공백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판 리스크 걱정마라= 은행들이 그간 10~20% 대 금리 상품 팔기를 주저한 것은 평판 리스크 때문이었다. 은행이 고리대금업을 한다는 비난이 두려웠던 거다. 그 사이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공격적인 영업이 이뤄졌다. 저축은행마저 서민대출을 외면했고, 대부업 시장은 시나브로 일본계에 장악 당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젠 당국이 나서 '희망홀씨' 같은 서민 전용 대출상품을 적극 개발하라고 권한다. 노림수는 금리경쟁 촉발이다. 은행이 낮은 금리로 카드사와 캐피탈 업체들 고객을 빼오면 이들 업체들이 금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캐피탈 업체가 금리를 인하하면 대부업체 이용 고객도 이동의 여지가 생긴다. 이른바 '연쇄 금리 인하'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당국 관계자는 "저신용자 계층을 위한 금리 공백을 채워준다는 데 누가 10% 넘는 금리를 받는다고 은행을 욕하겠냐"며 "마진을 너무 많이 남기지 않는다면 전용 상품 만들어 은행 안에서도 팔고, 자회사를 통해 더 많은 상품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판 리스크 걱정 말고 사회적 공헌에 매진하라는 게 당국의 생각이다. 은행에서 파는 게 꺼림직 하면 지주 자회사로 서민전용 상품을 다루는 회사를 만들어 팔아도 문제될 게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