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신한금융그룹(신한지주(96,700원 ▲5,300 +5.8%)) 회장이 결국 스스로 사퇴했다. 51년 뱅커로서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라응찬 회장은 30일 신한지주 정기 이사회에서 자진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라 회장의 이번 사퇴는 예견됐다. 최근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이를 밝힌 바 있었고, 이날 이사회에 앞서 "사람을 그렇게 의심 하냐. (사퇴한다고) 약속했지 않았나"고 말했다.
라 회장은 이미 지난 7일 오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다음달 4일 금융감독원이 제제심의위원회를 열고 '직무 정지' 상당 등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일각에선 라 회장이 선택할 카드가 자진사퇴 외엔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로써 라 회장은 승승장구했던 50여 년 뱅커 생활을 명예롭지 못하게 마감하게 됐다. 시골에서 중학교만 겨우 마치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와 갖은 노력 끝에 금융계 '이병철'로 불렸던 그였다.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라응찬 회장은 1959년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농업은행(현 농협)에 입행, 뱅커의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은행 일을 배웠다. 1975년부터 대구은행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라 회장은 1977년 초 재일동포 기업인 이희건 명예회장을 알게 됐다. 이 명예회장이 우리나라에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하려고 준비하면서 당시 김준성 외환은행장에게 라 회장을 소개받았다.
라 회장은 이후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때 상무를 시작으로 '신한맨'의 표상이 됐다. 그는 10년 만에 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10년 후 신한지주가 탄생할 때 회장직을 맡았다. 이후 조흥은행 인수, LG카드 인수 등 굵직굵직한 M&A를 성공시켰다. 재일동포 주주들도 이때까진 라 회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수많은 신한맨들은 그를 롤 모델로 삼고 뱅커로서 꿈을 키웠다. 신한금융그룹을 국내 3위(총자산 기준)로 키워낸 라 회장은 직원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신한문화'의 상징이었던 라응찬 회장. 이제 그 문화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신한금융그룹 내부 핵심 관계자는 "지금의 신한을 만든 데 큰 공을 세운 게 라응찬 회장임에는 틀림없지만 명예롭게 퇴진하지 못해 아쉽다"며 "3연임에 만족하고 스스로 물러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만시지탄이지만 잘한 결정이다"면서도 "이사직은 내놓지 않아 앞으로 또 다른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