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간지러웠던 일요일 오후. 머니투데이 편집국에서 내근을 하다 문득 사무실에 걸려있는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신영복 선생의 서화 '함께 맞는 비'다.
먹으로 힘입게 쓴 '함께 맞는 비' 아래에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는 작은 설명글도 써 있다.
바깥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금융권의 기상도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악천후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탓일까.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를 시작으로 부산저축은행그룹과 보해·도민저축은행의 잇따른 영업정지. 대규모 예금인출. 이와 관련 속속 드러나는 금융당국의 비리와 불법. 현대캐피탈의 해킹사건. 농협의 장기간 전산마비 사태. 43년간 꿋꿋했던 제일저축은행의 대규모 인출사태. 삼성카드의 '65억원 상품권깡' 사건 등.
수많은 일들이 지난 4개월 동안 벌어졌고 아직도 검찰 수사와 금융당국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금융은 신용이다. 신용은 쌓기는 어렵지만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개인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고금리, 한도제한 등으로 금융거래에 불편을 겪는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과 감독기관이 신뢰를 잃었을 때 소비자가 예금인출, 거래중단, 보상요구를 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벌어진 사건들 중 '함께 맞는 비'와 오버랩 되는 사건은 현대캐피탈과 제일저축은행이다.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고 현장에서 대표이사를 직접 만나 심경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함께 비를 맞으며 사건을 해결해가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떠올라서다.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은 정보기술(IT) 책임자를 문책하는 대신 '내 잘못이 가장 크다. 죄송하다'고 먼저 사과했다. 그리고 IT과외를 받아가며 보안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제일저축은행이 대규모 예금인출로 당황하고 있을 때 저축은행중앙회를 중심으로 1조원 규모의 크레디트라인(신용공여한도)을 개설해 든든한 우산이 되어 줬다. 상대적으로 고금리로 수신하고 있는 저축은행으로서는 예금담보대출 6.5%의 금리는 역마진도 감수한 결정이었다는 후문이다.
금융권과 소비자도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는 관계를 새로 형성해 나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