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금융의 입장에서 보면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통념이 무너진 것을 들 수 있다. 5개 은행이 일시에 퇴출됐고 2000년대 중반까지 적지 않은 은행들이 간판을 내렸다.

'은행에 맡긴 내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은행이 망해도 5000만원까지는 무조건 보장한다는 현재의 예금보장 기준이 생긴 것도 IMF 위기의 유산이다.
이후 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전성이었다. 건전성은 결국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이 맡긴 자산은 안전하게 관리해서 돌려 줄 수 있다'는 개념이다. BIS 자기자본비율이니 부실채권비율이니 하는 각종 건전성 지표가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은행권에서 건전성이 위협받는 곳은 없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은행의 BIS비율은 평균 14.55%다. 국제 기준은 물론 금융당국의 경영실태평가 1등급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기본자본비율과 보통주자본비율도 모든 은행이 1등급 기준을 초과하고 있다. 망해서 내 돈 못 돌려줄 은행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IMF 위기는 이렇게 은행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올 초 벌어진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금융사(史)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다. '월드 레코드'(세계신기록) 수준의 유출건수 때문이 아니다. 개인정보를 대하는 금융회사와 고객 모두의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에게 개인정보는 활용의 대상이었다.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이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고객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개념은 금융업이 가야할 방향이다.
하지만 금융권은 정보 역시 고객이 맡긴 돈처럼 안전하게 보관했다 고객이 인출을 요구하면 돌려줘야 할 자산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맡긴 돈(정보)을 강도에게 뺏기거나(해킹이나 유출), 엉뚱한 곳에 운용하거나(제3자 정보제공), 인출(폐기)을 요구했는데도 계속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보'를 돈과 같은 고객의 자산으로 인식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IMF 위기 이후 은행권엔 '우량은행'이란 용어가 있었다. 부실에 허덕이던 은행(비우량)과 건전성이 양호한 은행(우량)을 가르는 용어였다.
독자들의 PICK!
당시 고객의 돈을 안전하게 돌려줄 수 있는 은행이 우량은행이었다면 이제는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고 돌려줄 수 있는 은행이 우량은행이다. 우량은행의 재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