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너무나 사소해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

[우보세]너무나 사소해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

신수영 기자
2014.06.08 14:23

'남는 게 없다는 장사꾼 얘기는 믿지 말라'는 말이 있다. 물건이나 서비스 등을 구매할 때 정보의 균형추가 어느 쪽에 더 쏠려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사는 쪽보다 파는 쪽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동등한 위치가 아니란 얘기다.

'장롱면허' 신세를 면하기 위해 자동차운전학원을 찾았다. 도로주행 연습을 하려고 하니 오래 기다려야했다. 주말에는 사람이 더 몰린다는 설명이다. 눈물을 머금고 두 주 뒤로 예약을 잡았다.

"일이 생겨 시간을 바꾸려면 24시간 전에 해야 해요. 24시간 보다 늦게 하면 손해를 보는 부분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손해를 보는 부분'인가를 묻자 수강료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도로주행 수강료는 한 번(기본 2시간 기준)에 6만~8만 원 정도 한다. 그런데 24시간 전에 변경을 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날린다고?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급한 쪽'이 이쪽이니 하는 수 없었다.

수강료를 입금하고 확인을 위해 전화를 하니 "주말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 전에 얘기를 해야 시간 변경이 가능하다"는 주의가 뒤따랐다. 말이 왜 다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아까 얘기했던 그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접었다. "안 빠지면 되지, 뭐." "학원 입장에서는 내가 갑자기 빠지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볼 수는 없었겠지." 등등 이해도 해보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급한 쪽은 내 쪽이니까.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해본 몇 곳의 자동차학원이 모두 비슷한 규정을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자동차운전학원과 관련된 규정(표준약관)을 보니, 소비자 귀책으로 불참할 경우 12시간 전에 통지하면 10%를 배상하게 돼 있다. 12시간 전 이후부터 예약시간까지 불참을 통지하면 20%를, 예약시간이 지나 불참해도 절반을 배상하면 된다.

하지만 이는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과정에 해당한다. 도로주행만 할 때도 이 규정이 적용되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관련부처도 딱히 규정이 있는지 애매해 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수강료를 낼 때 '24시간 전 통보'를 약속했으므로 개별약정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해줬다. '사전 협의'를 통해 소비자가 동의한 만큼, 설령 해당 규정이 적용되는 사안일지라도 약관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공정위 약관이 무슨 소용인가. 사실 둘러보면 이런 사례는 많다.

최근 붐이 이는 퍼스널 트레이닝(PT)만 해도 그렇다. 한 시간 수강료가 수 만원을 호가하지만 24시간 이후 통보하면 금액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규정에 사인하도록 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식장 예약이라든지, 사진관 앨범 제작 등 일상 곳곳에서 '비슷한 류'의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도로연수 같은 건 생애 한두 번 하는 것이니까, PT야 원래 여유가 좀 있는 이들이 하는 거고 비싼 게 당연하니까. 그래서 파는 쪽은 우월한 지위에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규정을 들이댄다. 금융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자의 권익이 올라가는 요즘인데, 여전히 소비자가 불리한 곳은 많다. 너무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따지기는 어쩐지 좀 그래서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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