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는 중소기업 10개 가운데 9곳은 실패하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한국금융연구원이 개최한 효율적인 구조조정 방안 세미나에서 나온 얘기다. 이날 참석한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채권단과 법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등 전국 14개 법원에 회생 및 파산 신청을 한 기업은 1500여곳에 달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다. 이들 중 90% 이상은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대부분 업체가 회생에 실패해 파산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포화상태인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나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회생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살 수 있는 기업이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 이면엔 책임을 피하려는 법원과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채권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금강레미콘 컨소시엄에 팔린 고성중공업(옛 천해지)이 대표적이다. 고성중공업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핵심 계열사라는 딱지 때문에 매각이 1년 이상 지연됐다. 대형컨테이너선 블록 생산에 강점이 있어 노리는 기업들이 많았지만 은행들은 유병언 관계사라는 점 때문에 인수후보자에게 인수금융 제공을 꺼렸다. 채권단은 손해를 분담하지 않기 위해 매각을 반대했다. 법원은 매각이 지연되는 동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매각이 늦어지면서 기업가치는 1000억원에서 600억원대로 떨어졌다.
매각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법원에서 파산에 전문성을 갖춘 판사가 채권단과 인수자, 은행 등을 모아놓고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고 회생절차를 진행했다면 잡음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새로 도입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은 적용 대상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채권단인 은행들이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암코에서 은행이 보유한 부실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업무가 진행되고 있지만 채권단에서 협조가 늦어지면서 구조조정 진행이 더뎌지고 있다는 것.
금융업계 관계자는 "유암코 1호 인수 업체가 나오는데 2~3달이 걸렸다"며 "시중 은행들이 손해를 안 보려고 소극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업무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해운·철강에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협력업체들도 함께 어려워질 전망이다. 기업구조조정의 큰 축인 기업회생절차와 워크아웃절차를 담당하는 법원과 채권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