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대참사' 드러나는 '진실'
지난달 16일 오전 수학여행 학생 등 476명을 태우고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장 등 책임있는 선원들이 먼저 달아난 가운데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믿은 300여 명의 승객들이 배와 함께 침몰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충격적 사고원인들이 드러나면서 세월호 참사가 '총체적 인재'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오전 수학여행 학생 등 476명을 태우고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장 등 책임있는 선원들이 먼저 달아난 가운데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믿은 300여 명의 승객들이 배와 함께 침몰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충격적 사고원인들이 드러나면서 세월호 참사가 '총체적 인재'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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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여 년 전 선박 사고로 가족을 잃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에 갔습니다. 김포에서 나리타(成田)까지 두 시간 동안 계속 울던 저를 보살펴준 사람은 옆자리의 일본여성 이었습니다.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하고, 등을 쓰다듬어주고, 그녀도 저처럼 기내식을 사양했습니다. 사고가 났던 시즈오카(靜岡)현의 소도시에 도착했을 때 마중을 나온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손수 운전을 해주시고, 사고 해역으로 갈 배를 수소문해주시고, 그 외에도 제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일들을 처리해주셨습니다. 외국에서 온 저를 돕기 위해 파견 된 분일 것이라 짐작하고 이것저것 부탁을 많이도 했습니다. "내일 아침 아홉시까지 흰 국화 한 다발을 사서 호텔 앞으로 와주세요" "한국식의 위령제를 지내고 싶으니까 쌀을 준비해주세요" 이런 부탁을 다 들어주셨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섬세하게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워낙 헌신적으로 도와주셔서 돌아오던 날 저는 약간의 사례를 준비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27일째인 지난 12일 오후, 적막감과 쓸쓸함이 감도는 진도 실내체육관에 순간 활기가 돌았다. 긴 기다림에 지치고 아픈 가족들이지만, 살갑고 친근한 이들에게만큼은 마음이 열렸다. 장판에 누워 있다가 부스스 일어나 햄버거를 받아드는 얼굴마다 미소가 번졌다. "함께버거가 왔어요. 몇 개 드릴까요? 여기 감자도 드리고…많이 드세요. 바로바로 드세요." 팽목항에서 '햄버거 아저씨'로 불리는 이 40대 남성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자원봉사자 2명과 실종자 가족 100인분, 잠수사 200인분의 버거를 뚝딱 만들어 전달했다. 그는 이름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저 진도 팽목항 길목의 2평 남짓한 '함께버거' 천막 주인장이라는 호칭으로 만족했다. '세월호 가족과 아픔을 함께 합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이 천막은 향긋한 고기 굽는 냄새로 행인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하지만 스님도, 목사도, 대통령도 버거를 곧바로 먹을 수 없다. 실종자 가족들과 잠수사들이 1순위이기에 기다려야
세월호 참사 28일째인 13일 기상악화 등으로 중단됐던 수색이 만 사흘만에 재개됐다. 그러나 빠른 유속으로 수색작업에는 여전히 난항이 예상된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새벽 0시52분부터 수색활동을 재개했으나 유속이 빨라져 별다른 성과없이 2시간만에 작업을 중단했다. 합동구조팀은 정조시간대인 오전 7시에도 수색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합동구조팀은 기상여건이 나아지면 언제든 수색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정조시간은 낮 1시15분, 저녁 7시15분이다. 합동구조팀은 수색이 재개되면 3층 선미 좌측 격실과 4측 선수 다인실, 선미 다인실 등을 집중적으로 수색할 계획이다. 장애물로 인해 접근이 어려운 4층 선미 좌측 다인실은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장비로 벽면을 뚫고 진입을 시도할 예정이다. 앞서 합동구조팀은 기상악화 등으로 인해 지난 10일 오전 3시49분 수색작업을 중단한 이후 이날 새벽 수색이 재개될 때까지 만 사흘동안 한 차례도 선내를 수색하지 못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측근 2명이 추가로 구속됐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검사)은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오경석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 대표(53)와 김동환 다판다 감사(48)를 구속했다. 이들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담당한 안동범 인천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영장발부 사유를 밝혔다.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는 유 전 회장의 사진 판매를 담당하던 계열사다. 오 대표는 회사 돈으로 유 전 회장의 사진을 고가에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다판다는 최근 구속된 유 전 회장의 최측근 송국빈씨(62)가 대표를 맡고 있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다판다로부터 경영자문료 명목으로 매달 1500만원을 챙기는 등 수년간 수십억원의 자금이 유 전회장 일가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김씨가 다판다 감사로 일하며 회사 자금이 유 전회장에게 흘러들어가는데 일정
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의 인명피해를 극대화한 원인으로 구명장비 오작동이 손꼽히는 가운데 구명장비 검사업체 한국해양안전설비가 통상 보름여 걸리는 구명장비 검사를 이틀만에 마쳤다는 진술이 나왔다. 검사일정을 앞당기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검사항목을 생략하는 등 부실 검사가 이뤄졌다는 것. 세월호뿐만 아니라 대형 선박들의 부실한 구명장비 검사가 관행처럼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2일 검·경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안상돈 검사장)에 따르면 수사팀은 지난 10일 체포한 한국해양안전설비 차장 양모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다. 구명장비 정비를 위해 세월호가 입고된 시기는 지난 2월11일로 정상적인 검사의 경우 구명벌(구명뗏목)과 슈트(비상탈출용 미끄럼틀)를 모두 떼 내 점검한 뒤 다시 설치해야한다. 이 경우 점검기간은 보름안팎이 걸린다는 게 합수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과 한국해양안전설비의 계약상 구명장비 정비는 2월15일까지 마무리하기로 돼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이 예정된 시간에 출석하지 않았다. 유 전회장의 자녀 모두가 검찰 소환에 불응한 것에 대해 검찰은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검사)은 12일 오전 10시까지 피의자신분으로 소환을 통보한 대균씨가 출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대균씨는 핵심 피의자로서 국민적 의혹이 큰 점을 감안해 사법절차에 원활히 협조해야 할 것"이라며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수사 초기 유 전회장의 변호인이 수사에 적극 협조해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차남 등은 귀국하지 않고 장남은 출석에 응하지 않아 의아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김명점 세모신협 이사장의 서울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도중 대균씨에게 매달 1000만원이 지급된 것으로 적혀진 세모의 급여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대균씨가 유 전회장과 함께 계열사 경영에 관여
고(故) 박지영씨(22), 고 김기웅씨(28), 고 정현선씨(28) 등 세월호 승무원 3명이 의사자로 인정됐다. 보건복지부는 12일 2014년도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고,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을 구해 살신성인의 표본이 된 고 박지영씨 등 6명을 의사자로, 최석준 씨 등 2명을 의상자로 각각 인정했다고 밝혔다. 의사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다. 이번 위원회에서 인정된 의사상자들의 의로운 행위는 다음과 같다. 고 박지영씨는 지난달 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방 1.8 해리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 될 당시,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안심시키며 구명의를 나눠주고 구조선에 오를 수 있도록 하고 본인은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다. 목격자 김모씨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구명의가 부족하게 되자, 승무원 박씨는 입고 있던 구명의를 여학생에게 전달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12일 세월호의 구명벌과 슈트(비상시 배에서 내리기 위한 미끄럼틀) 검사를 맡았던 한국해양안전설비 차장 양모씨(37)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씨는 세월호의 구명장비 점검을 맡아 17개 항목에 모두 '양호' 판단을 내려 한국선급에 보고, 안전점검을 소홀히 한 혐의(업무방해 등)를 받고 있다. 양씨의 구속여부는 12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될 전망이다. 합수부는 양씨가 지난 2월 선체이탈, 가스팽창 등을 포함한 17개 구명설비 검사항목 대부분을 점검도 하지 않은 채 한국선급에 허위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판단했다. 합수부는 지난 10일 오전 업무방해 등 혐의로 양씨를 체포했다. 양씨는 같은날 오후 1시30분쯤 목포 해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지난달 16일 오전 세월호 침몰 당시 구명벌은 총 46개 중 단 1개만 펼쳐졌다. 구명벌은 수심 3~4m 이상 잠기면 펼쳐져야 하지만 세월호 구명벌은 침몰 후 선박이 가라앉고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팽목항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자원봉사를 해온 4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일 안산 단원경찰서에 따르면, 세월호 희생 및 실종자 가족들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를 해온 A씨(47)가 지난 9일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아들 둘을 두고 있어 세월호 침몰사고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희생자 가족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봉사활동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세월호 사고 초기부터 진도와 안산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며 "희생자 유족들을 돌보면서 당초 우울증 증세가 악화돼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바다 속에서 오래 기다렸다. 잠수사들은 검고 넓은 바다를 헤쳐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안아 올린다. 2시간가량 배에 실려 진도 팽목항의 '시신 임시 안치소'로 옮겨진 아이들은 이름이 없다. 아이들의 이름을 찾아 가족들에게 돌려주는 이들이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신원확인단(Korea DVI)은 팽목항 임시 안치소에 파견돼 24시간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의 신원확인을 돕고 있다. 국과수와 대학, 수사기관, 유전자 감식단 등 전문가들이 모였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법의치과학자인 조선대 윤창륙 교수(59)는 사고 7일째인 지난달 22일에 투입돼 치아를 검시하고 있다. 처음 일주일은 해경과 지역 병원 의사들이 신원 확인을 맡다 시신이 뒤바뀌기도 했다. 치아는 형태가 오래 보존되고 한 번 손상되면 재생이 불가능해 지문, DNA와 함께 신원을 판별하는 중요 정보로 활용된다. 치아에서 구강조직 유전자를 채취하거나 성별, 나이를 알 수도 있다. 치열 등 중요 특징을 확인하고
검찰이 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영상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 해경이 사고해역 도착 즉시 선내에 진입했을 경우 승객 대부분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검찰 등에 따르면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는 최근 세월호가 사고 직후부터 침몰할 때까지 시간대별 기울기 분석을 마쳤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우선 해경 헬기 B511호가 현장에 도착한 당일 오전9시30분 세월호는 좌현으로 45도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이어서 바다에선 해경 경비정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때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은 "해경이 도착했다", "배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는 메시지를 전송했다. 이어 15분후 쯤 세월호는 좌현으로 62도 가량 기울어졌다. 진도 VTS(해상교통관재센터)와의 교신이 9시38분에 두절된 것을 미뤄보면 선장 이준석씨 등 선박직 선원 들은 모두 이 시간대에 탈출한 것으로 분석된다. 해경 도착 시점보다 이동이 어려워지긴 했으나 이동이
뉴욕경찰청(NYPD) 청장에 윌리엄 브래튼이 부임한 것은 1994년. 당시 뉴욕시는 세계 최악의 '범죄도시'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1993년 한해 동안 뉴욕에서 발생한 살인사건만 1946건에 달했다. 매년 우리나라 인구와 비슷한 4000만∼50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세계 최고의 관광 도시였지만 시민 뿐 아니라 관광객들까지 강력범죄의 위험에 언제든 노출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브래튼이 부임한지 3년 뒤인 1997년 뉴욕시의 살인사건 건수는 770건으로 4년 만에 무려 60%나 줄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브래튼이 부임했을 당시만 해도 뉴욕시는 '경찰력이 먹혀들지 않는 곳'이었다. '배트맨'의 배경이 된 '고담시티'가 바로 뉴욕시의 모습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경찰 간부들은 현장 상황을 모른 채 주먹구구식으로 인력과 장비를 배분했다. 갱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에 경찰 2명만 투입시키고, 안전한 지역은 10명이 지키는 식이었다. 또 경찰들은 낮은 처우에 사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