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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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고려 말, 원나라가 북쪽으로 쫓겨가고 중국 본토를 차지한 명나라는 이전의 원나라 땅은 모두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했다. 한때 원나라가 점령했던 고려의 철령 이북 땅에도 철령위를 세우겠다고 결정했다. 이 지역은 원나라 세력이 약해진 후 고려의 공민왕이 되찾아온 땅이었다. 이에 고려 조정은 크게 반발하고 최영 장군을 중심으로 이성계와 조민수 등에게 명나라의 전진 기지인 요동 정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성계는 요동정벌을 반대하며 최영 장군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성계의 의견은 묵살당했다. 어쩔 수 없이 요동정벌에 나선 이성계는 위화도 부근에서 큰 비를 만나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성계는 결국 지원받은 군사와 개인사병으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개경을 점령했다. 위화도 회군이었다. 그곳에서 최영 장군을 제거하
1968년 2월, 마틴 루터 킹이 고향 애틀랜타의 에버니저 교회 연단에 올라 입을 열었다.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긴 장례를 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긴 조사(弔辭)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마틴 루터 킹은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기 위해 애썼으며 인간다움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 몸 바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염원이 담긴 이 연설은 킹 목사의 유언이 돼 버렸다. 48년 전 오늘인 1968년 4월4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괴한의 총을 맞아 사망했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의 한 모텔 발코니에서 파업한 흑인 청소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발생한 일이다. 용의자는 모텔에 잠입해있던 테네시 출신의 인종차별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 킹 목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은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선포했다. 예상치 못한 암살은 아니었다. 그를 없애기 위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사람을 보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
광복 직후 제주도에는 해외에 나가있던 동포들이 일제히 몰려왔다. 생필품은 부족했고 전염병의 발병으로 수백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 민생이 피폐한 상황에서 일부 관리와 경찰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부정을 일삼았다. 한 사건이 제주도민의 경찰에 대한 반감에 불을 붙였다. 1947년 3월1일, 3·1절을 맞아 제주도 내 좌파진영은 곳곳에서 기념집회를 주최했다. 광장에서 구경하던 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차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군중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했고 경찰은 이를 습격으로 오인해 발포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남조선노동당(이하 남로당) 제주위원회는 이 사건을 발판으로 삼아 본격적 반경활동에 착수했다. 미군정은 남로당이 제주도민의 경찰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선동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해 좌익세력 척결에 주력하는 정책을 전개했다. 69년 전 오늘(1947년 4월3일) 남한만의 단독 선거 결정에 반발한 제주도 좌익세력은 350명의 무장대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우익단체 요인의
2003년 3월20일, 미국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미사일 공습을 감행했다. 당시 미국이 내세운 침공 명분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 살상무기(WMD)를 보유했다는 것. 한 해전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반미감정이 확산된 후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한국정부는 같은 해 12월 북한의 핵 동결 파기선언으로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서둘러 파병을 준비해다.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전 개전날인 2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소집, 건설공병대 600명과 의무부대 100명 이내의 병력을 현지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인 21일 국무회의에선 '국군부대의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이 의결돼 국회에 제출됐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곧바로 파병반대운동을 벌였고 파병 찬성의원들에 대해선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여야 의원들도 '반전·평화 의원 모임'을 결성해 조직적으로 파병반대에 나섰다. 여야는 같은 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파견동의안
"다리가 없는 새가 살았다고 한다.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잠이 들었다.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는 날이었다."(영화 '아비정전'에서 주인공 아비의 대사) 13년 전 오늘(2003년 4월1일) 거짓말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 느와르(1980년대 홍콩에서 만들어진 어두운 분위기의 범죄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배우 겸 가수 장국영(張國榮·장궈룽)의 사망 소식이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국 언론사들의 만우절 이벤트라고 여겼다. 하지만 주요 외신 보도가 이어지면서 농담으로 받아들여졌던 소식은 사실이 됐다. 1년 이상 대중에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던 장궈룽이 이날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떨어졌고 후송도중 숨을 거둔 것이다. 그는 "마음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感情所困無心戀愛世)"는 글을 남기고 팬들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장궈룽은 1956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1889년은 프랑스 대혁명이 100주년 되는 해였다. 프랑스는 대혁명을 기념하는 동시에 자국 산업기술력을 전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파리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앞서 세차례 세계박람회를 유치해 국제적 위상을 높였었던 프랑스는 네번째 행사에선 특별히 기념할만한 조형물이 필요했다. 프랑스는 이전까진 건축물 재료로 잘 쓰이지 않았던 철을 이용해 상징물을 짓기로 했다. 건립계획과 설계도가 나오자 파리 시민들은 상징물의 이미지에 경악했다. 1만5000개의 금속덩어리를 250만개의 나사못으로 연결하는 무게 7300톤, 높이 300.5m의 거대한 철골탑 구조물이 파리 특유의 분위기를 망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파리 시민이 건립 반대 시위에 나섰고 정부는 20년 후 철거를 약속하고서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철골 구조물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 내부 강철프레임과 니스 천문대 가변 돔을 설계하면서 당시 '강철의 마술사'로 불렸던 철교 건설전문가 귀스타브 에펠의 손에 맡겨졌다. 18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세종대왕은 후대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위인이기도 하다. 알려진 그의 업적과 애민정신은 5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반인들에게 큰 존경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평이다. 그는 당대에 이미 '해동요순'(중국 동쪽의 요임금·순임금)이라고 불리면서 신격화될 정도였다.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의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 시호는 장헌(莊憲)이다. 그는 조선 제3대 왕인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1397년 5월 15일 태어났다. 셋째 아들이었던 그가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던 건 장자인 양녕대군의 기행도 한몫했지만 세종의 학문에 대한 태도가 주된 이유였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은 세종을 세자로 삼을 당시 "충녕대군(세종)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고 자못 학문을 좋아하며, 치체(治體·정치의 요체)를 알아서 매양 큰일에 헌의(獻議·윗사람에게 의견을 아룀)하는 것이 진실로 합당하기에 왕세자로 삼는다"고 밝혔다.
전세계 야구 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선 매년 양대 리그에서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선보인 투수 1명씩을 뽑아 '사이 영 상(Cy Young Award)'을 수여한다. 이 상을 탄 선수는 명실상부 그 해 전 세계 최고의 투수로 평가된다. 사이 영은 149년 전 오늘(1867년 3월29일)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덴튼 트루 영이다. 별명으로 붙은 '사이'는 사이클론(태풍)의 약자로 당시 그의 공이 너무 빨라서 붙은 애칭이다. 기자들에 의해 본명인 덴튼 트루 영보다 애칭인 사이 영으로 불렸던 그는 MLB에서 투수가 세울 수 있는 모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1890~1911년 사이 5개팀에서 뛰면서 개인통산 511승 316패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했다. 그는 프로선수로 22년간 뛰면서 최다승(511승) 외에도 △최다이닝 투구(7355이닝) △최다경기 선발(815경기) △최다경기 완투(749경기) △최다패(316패)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최다승과 최다
일요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무궁화호 제117 열차는 막 부산시 물금역을 지나 구포역을 향하고 있었다. 5시간 넘게 열차에 몸을 실은 승객들은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곧 목적지인 부산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승객들이 하나둘씩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채 5분도 안된 사이 승객들의 분위기는 반전됐다. 열차가 큰 소리를 내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기차는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승객들의 아우성과 함께 기관차, 발전차와 객차 2량이 무너진 지반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뒤집어졌다. 뒤에 이어진 차량도 탈선했다. 1993년 3월28일 부산시 구포역 인근에서 기차 전복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78명이 사망하고 198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전체 승객이 600여명이었음을 감안하면 3명 중 1명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은 것이다. '구포역 기차 전복사고'는 우리나라 사상 최악의 기차사고로 기록됐다. 이날 사고 원인은 선로의 주저앉음 현상 때문이다. 사고
1991년 영국 웨일스 스완지에 위치한 모리스턴병원에서 협심증(심장에 혈류공급이 급격히 줄어들어 생기는 가슴통증) 치료약 신약후보 물질의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아쉽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로운 부작용이 발견됐다. 당초 이 신약은 심장 동맥을 확장해 피를 더 보내 가슴 통증을 줄이려고 개발됐었다. 그런데 이 신약이 의도치 않은 곳으로 피를 더 보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남성들이 갑자기 발기증상을 호소한 것. 신약이 피를 '음경'(陰莖)으로 보내고 있음을 확인한 연구진은 흥미로운 부작용에 관심을 갖고 전혀 다른 용도에 초점을 맞췄다. 제조사인 화이자는 협심증 치료에서 방향을 틀어 발기부전 치료제 신약을 상품화하기로 했다. 이 약이 바로 18년 전 오늘(1998년 3월27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출시된 '비아그라'다. 비아그라 개발을 주도했던 화이자의 브라이언 클리 박사는 "비아그라는 원래는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 없었던 약이었다"고 밝혔었다. '비타민V'
47년 전 오늘(1969년 3월25일) 오후 서울 명동 성모병원(서울성모병원 전신). 가톨릭대 의과대학 성모병원 외과 이용각 교수를 필두로 15명의 의사와 간호사 등 총 40여명의 의료진이 수술실로 향했다. 3시간여 뒤 이들은 우리나라 의학사의 새로운 한 줄을 썼다. 신장 이식을 성공시켜 국내 첫 장기이식 수술을 해낸 것이다. 이 수술은 가족간의 신장 이식 수술이었다. 당시 환자인 재미교포 정모씨는 수술 1년 전인 1968년부터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다. 이에 정씨의 형이 자신의 신장을 내놓겠다며 병원을 찾아 이식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 신장 이식에 대한 개념도 없던 터라 정씨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한번에 다 잃을 수 없다"며 자신의 신장을 제공하기로 한다. 때마침 명동 성모병원 의료진은 미국에서 첨단 인공 투석기를 들여와 가동 중이었고, 이 교수가 미국 휴스턴 베일러의대에서 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신장 이식 수술법을 익히고 돌아온 상황이었다. 수술은 3시간28
"북에는 소월(素月·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요적(謠的·민요적)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다." 시인 정지용이 문예지 '문장(文章)'에 박목월을 추천하면서 한 말이다. 박목월은 1915년 1월6일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 되던 해 아동잡지 '아이생활'에 동요를 투고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의 본명은 박영종이지만 시를 쓸 무렵 필명을 '목월(木月)'로 짓는다. 그가 좋아했던 수주(樹州) 변영로의 호에서 '수'에 포함된 '목'자를 따오고 김소월의 이름에서 '월'을 따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목월은 1939년 '문장'으로 등단할 때 정지용의 찬사를 받으며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문학은 드넓은 고향의 자연환경과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런 배경 때문에 그의 시는 민요가락의 향토색 짙은 서정과 소시민의 생활 속 소박함과 담담함이 담겨있다. 박목월만의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