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조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미래대응기금이 국회의 통제를 벗어난 정부의 '묘수'인 동시에 국회 입장에선 '꼼수'로 평가되면서 논란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정부가 국회를 패싱하고 사실상 '상시 추경'을 하게 되면 국회의 예산 심의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단 비판에 직면하면서다.
23일 기획예산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당해연도 세입 측면에서 새로운 재원이 생기고 새로운 정책 수요가 발생하면 추가 재원을 활용해 신속한 대응을 하는 것이 미래대응기금의 용도라고 설명한다. 지금처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각국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에선 더욱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반도체 사이클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수결손이 발생했을 때 미래대응기금을 활용해 편성된 사업이 중단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미래대응기금을 이용하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복잡한 절차를 건너뛸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을 이용해 '상시 추경'의 물꼬를 트는 배경엔 추경 편성 때마다 추경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반복되는 정치권의 논란이 자리한다. 당장 올해만 해도 정부는 중동 사태를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라며 추경 요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야당에선 추경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선거 추경'이라고 맞섰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은 △전쟁·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경우로 한정한 비상 수단이다. 이같은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어 매번 정부·여당과 야당은 충돌을 반복해 왔다. 미래대응기금이 이같은 충돌을 피할 정부의 복안으로 평가되는 배경이다.
다만 국회 통제를 덜 받는 '재정 주머니'가 생기는 것에 대한 반발이 적잖을 전망이다. 예산권을 쥔 국회를 패싱한단 지적이 나오면서다. 국가재정법상 기금은 국회 승인 없이 주요 항목 지출금액의 20~30%(사업성 기금 20%, 금융성 기금 30%) 범위에서 정부가 임의로 지출 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
기금운용계획은 국회 심사를 받지만 이같은 경우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단 의미로 국회 통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머니를 차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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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의식한 듯 정부도 '국회 패싱'보단 기금 운용의 자율성에 기반한 '대응력'에 초점을 맞춘다. 긴급한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수결손 시 재정을 신속하게 보강하고 세수 변동성도 완화할 수 있단 취지에서다. 당장 국채를 상환해 이자 비용을 절감하는 것보다 세수결손 시 국채를 발행했을 때 이자 비용이 더 클 수 있단 이유도 내세웠다.
박홍근 기획처 장관은 "국회 상시 추경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기금이 마련되면 모든 것은 기금운용법·국가재정법에 따라 국회의 심의 그리고 법률적 근거에 기반해 집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재정법에 근거해 기금의 자율성을 충분히 활용하겠단 취지로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정부는 지속가능한 미래대응기금 운영을 위해 반도체 사이클 주기뿐만 아니라 향후 산업 구조 변화도 고려했다. 현재 세입 구조는 반도체 업황에 따라 3~5년 주기로 세수결손과 호황이 반복돼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금 설계 단계에서 세수 추세치를 반영했단 설명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래대응기금을 20~30%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데 여전히 국회 승인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남아있다"며 "특히 국회 예산권을 빠져나가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단 위험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