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는 총알로 악인 처단, 극장에서는 눈물로 가족 구원
총 든 워킹맘과 복수 나선 K-장녀…'죽여주는' 활약

대중문화에는 늘 비교가 따라붙는다. 같은 시간대에 공개되는 작품, 비슷한 위치에 놓인 배우와 가수, 한 장르 안에서 보여주는 다른 선택, 한 인물이 만들어낸 색다른 얼굴까지.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VS'를 떠올리며 보고 듣고 말한다. 이 코너는 이런 비교를 출발점 삼아 '차이'가 어떤 재미와 의미를 낳는지를 살핀다. 같은 판에 놓였지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대상들을 나란히 놓고 각각의 방식과 매력을 면밀히 짚는다. <편집자 주>
공효진이 요즘 아주 제대로 사람을 죽인다. MBC 금토 드라마 '유부녀 킬러'에서는 법망을 빠져나간 악인들을 단 한 발로 처단하고, 영화 '경주기행'에서는 막냇동생을 살해한 범인을 죽이기 위한 가족여행에 몸을 싣는다.
두 작품 모두 복수를 다루고 공효진의 손에는 누군가의 목숨이 걸려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얼굴은 정반대다. '유부녀 킬러'의 유보나는 어떤 변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전설의 저격수다. 반면 '경주기행'의 장주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나섰지만 엄마와 동생, 남편과 딸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평범한 장녀다.
한쪽에서는 총알 한 발로 두 명의 악인을 꿰뚫고, 다른 쪽에서는 오래 눌러온 울음을 터뜨리며 가족의 굳은 상처를 헤집는다. 몸을 날리는 화려한 액션부터 가슴을 후벼 파는 생활 연기까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주 '죽여주는' 공효진의 활약상이다.

'유부녀 킬러' 공효진, 총알 한 발로 안방 삼킨 킹피셔
'유부녀 킬러'의 유보나는 남편과 네 살배기 딸을 둔 5년 차 주부이자 킹피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저격수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그는 아이의 등하원을 챙기다가도 임무가 떨어지면 처벌을 피해 간 범죄자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유보나의 활약은 그야말로 원샷원킬이다. 태공산 펜션에서는 술에서 깨자마자 장기 매매 조직을 맨몸으로 제압하고 달아나는 아동 성범죄자 표규철을 단 한 발로 쓰러뜨렸다. 카지노에서는 탁종구와 천성길의 머리가 겹친 찰나를 포착해 한 발로 두 명을 동시에 제거했고, 20년 전 이동진(이상이)의 부모를 살해한 장은학까지 정확하게 처리했다. 계획이 어긋나도 침착하게 미션을 마치며 전설적인 킬러의 위력을 실감하게 했다.
공효진은 이 판타지적인 인물의 발을 현실에 단단히 붙여놓는다. 킬러의 서늘한 얼굴에서 주부의 생활감으로 돌아오는 순간에도 연기의 이음매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총구를 겨눌 때는 호흡과 시선까지 냉정하게 통제하다가도 가족 앞에서는 목소리 온도부터 달라진다.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남편과 딸을 달래며 가사와 육아에 치이는 모습은 주변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워킹맘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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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만큼 빛나는 것은 복잡한 감정선을 세밀하게 담아낸 공효진의 얼굴이다. 유보나는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가 번지는 것을 경계하고,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공효진은 짧은 망설임 뒤 단호해지는 눈빛과 담담하게 눌러낸 대사로 통쾌한 응징 뒤에 자리한 인물의 고민과 신념까지 놓치지 않는다.
권태성(정준원)과의 과거가 공개된 뒤에는 공효진의 전매특허인 로맨스 연기도 고개를 들었다. 결혼 전 감정에 무뎌진 유보나가 자신을 향한 권태성의 진심을 확인하고 조금씩 경계를 푸는 과정에서다. 짧은 머뭇거림과 어색한 미소, 슬며시 부드러워지는 말투만으로 서툰 설렘을 피워냈다.
킬러, 워킹맘, 아내, 직장인이라는 여러 얼굴을 자유롭게 오가는 공효진 덕분에 비현실적인 설정은 생활밀착형 서사로 변모했다. '유부녀 킬러'가 시청률 10%를 돌파할 수 있었던 동력도 여기에 있다. 공효진은 총알로 악인을 쓰러뜨리고 생활 연기로 시청자의 마음까지 정확히 명중시킨다.

'경주기행' 공효진, 죽이러 갔다가 가족 살린 K-장녀
'유부녀 킬러'의 유보나가 사람을 죽이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문가라면 '경주기행'의 장주는 너무 평범해서 차마 악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엄마 옥실(이정은)과 세 딸 장주, 영주(박소담), 동주(이연)는 8년 전 수학여행에서 살해된 막내 경주의 생일을 맞아 경주로 떠난다. 겉으로는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은 화목한 가족여행이지만 봉고차 트렁크에는 경주를 죽인 살인마 백상현(변요한)이 실려 있다.
장주는 엄마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장녀다. 일찌감치 엄마의 일을 돕고 동생들을 건사해온 그는 결혼해 남편과 딸이 생긴 뒤에도 친정 가족을 삶의 맨 앞에 놓는다. 엄마의 감정을 살피고, 틈만 나면 부딪치는 동생들을 말리고, 흔들리는 복수 계획을 붙잡는 일도 모두 장주의 몫이다.
공효진은 가족을 챙기는 일이 너무 익숙해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K-장녀의 몸짓을 생활감 있게 그려낸다. 엄마에게 묻은 흙먼지를 자연스럽게 털어주고, 가족이 금기시하는 말이 나올 것 같으면 재빨리 대화를 막는다. 큰 사건보다 이처럼 사소한 움직임에서 장주가 평생 짊어져 온 책임의 무게가 드러난다.

"가족 일에 무슨 논리가 필요해." 장주를 가장 잘 나타내는 극 중 대사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인 동시에 자신의 감정과 삶을 매번 뒤로 미뤄온 장녀의 체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주는 완벽하게 엄마의 편일 수만은 없다.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남편과 어린 딸이 있다. 엄마의 복수를 완성해야 한다는 의무와 자신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 사이에서 균열이 생긴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해왔던 장주는 엄마에게 어느 날 "우리 이제 평범하게 살면 안 되냐"고 울분을 터뜨린다. 원망과 죄책감, 두려움과 사랑이 한꺼번에 뒤엉킨 장면이다.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끝내 미워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싶으면서도 친정 가족을 버릴 수 없는 장주의 모순이 거친 울음 속에서 고스란히 터져 나왔다.
공효진은 장주를 네 모녀 가운데 가장 평범하되 묵직한 인물로 만든다. 앞에 나서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신 다른 가족의 감정을 받아내고 연결하면서 극의 중심을 잡는다. 엄마 옥실 역의 이정은이 굳어버린 슬픔으로 영화의 무게를 버틴다면, 공효진은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 무게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결국 '경주기행'에서 공효진의 가장 죽여주는 장면은 누군가를 죽일 때가 아니라 자신이 무너질 때 완성된다. 장주는 범인을 향해 칼날을 세우지만, 공효진은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 묻힌 장녀의 응어리를 꺼내 관객의 마음 한가운데를 명중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