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취업하려면 경력이 필요한데, 경력을 쌓으려면 먼저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 청년 구직자들이 마주한 모순이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에게 경력직 수준의 역량을 요구하는 '경력 인플레이션(Job experience inflation)'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AI(인공지능)가 신입사원 업무의 일부를 대신하면서 취업 문턱은 더 높아졌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지난 8월 발표한 '세계 청년 고용 동향'에서 AI에 따른 일자리 구조 변화와 경력 인플레이션을 청년 고용의 주요 걸림돌로 지목했다. 과거에는 높은 학력을 요구하는 '학력 인플레이션'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근무 경력과 숙련도가 새로운 진입 장벽이다. 기업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원하지만, 청년에게는 그 능력을 키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 기업은 늙어가고 있다. 40대 차장이 막내인 부서도 낯설지 않다. 2025년 삼성전자(213,750원 ▼1,750 -0.81%)의 20대 직원 비중은 20.6%로 2년 전보다 6.5%포인트(p) 감소했다. SK하이닉스(1,286,000원 ▲9,000 +0.7%)와 현대차(288,500원 ▼7,000 -2.37%), LG전자(157,200원 ▲100 +0.06%) 등 주요 기업도 20대 직원 비중이 19~22%대에 머물러 있다. 신규채용에서조차 20대 비중이 줄고 있다.
기업의 '중고 신입' 선호에는 이유가 있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교육하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경직된 인력 운용 구조와 장기 고용에 따른 부담도 무시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 신입보다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경력자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경력직만 찾는다면 '새로운 인재는 누가 키울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이 산업 전체에는 인재 육성 기반을 허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의 인건비를 아끼려다 미래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셈이다.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년과 임금체계, 근로시간 제도 등을 논의할 때 기존 근로자의 권익뿐 아니라 신규 채용에 미칠 영향도 따져야 한다. 재계에서는 고용을 어렵게 하는 정책만 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고용 안정과 유연성을 대립시키는 논쟁에서 벗어나 양질의 현장훈련, 채용 보조금 등 청년 채용을 늘릴 실질적인 유인을 마련해야 한다.
청년 고용 위기를 단순히 일자리 부족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경력 인플레이션'은 노동시장의 진입 장벽을 더 높이고 있다. 기존 근로자의 고용 안정도 중요하지만 새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도 마련해야 한다. 청년이 경력을 쌓을 노동시장은 만들지 못하면서 미래 인재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모순부터 끝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