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얼굴 반점 제거술 90년대 도입
치료비 못대 '점쟁이' 놀림 속 살기도
미용시술 간주해 건보 제외는 불합리
얼마 전인가 진료실에 스무 살 남짓한 여성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생글생글 웃기만 하길래 왜 웃느냐고 물었더니 "저 모르시겠어요?" 하고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재 초진이란 등록상황을 보니 과거 내 진료를 받았던 환자였다. 예전 의무기록을 뒤지고 서야 15년 전 오타모반을 치료받던 아이란 걸 알았다. 오타반점은 주로 눈 주위에 푸르스름한 점이 태어날 때부터 발생하는 병이다. 아마도 15년 전 꼬맹이 때 나에게 자주 와서 레이저를 받았을 것이다. 그날 내 눈 앞에는 흔적 하나 없는 고운 얼굴이 앉아 있었다. 솔직히 의사 노릇 하며 이런거야 말로 진정한 보상을 받는 느낌일 거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한 반에 꼭 한둘씩 '점쟁이'란 별명을 단 아이가 있었다. 사주를 봐주는 아이가 아니라 얼굴 어딘가에 점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붙은 이름이었다. 코 점쟁이, 입 점쟁이…. 부르는 쪽은 놀리는 줄 모르고 불렀고, 불리는 쪽은 짐작건대 속이 오래 문드러졌을 것이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타고나는 점은 종류도 많다. 붉은 점, 푸른 점, 검은 점, 갈색 점…. 화염상 모반, 오타 모반, 카페오레 반점, 선천성 색소성 모반…. 이름이 다른 만큼 원인도 치료법도 제각각이다. 이 점들을 흉터 없이 지울 수 있게 된 것은 색소를 겨냥한 레이저가 등장한 1990년대 이후다. 의학 역사에서는 어제 일에 가깝다. 요즘은 주름과 잡티를 다루는 미용기기로만 알려진 레이저가, 실은 선천성 모반에 가장 강력하고 거의 유일한 치료 도구인 셈이다.
선천성 모반은 아프지 않고 몸에 큰 이상을 초래하지도 않는다. 의학적으로 "괜찮습니다" 한마디로 정리된다. 그런데 아기를 안고 처음 진료실에 들어온 부모가 던지는 질문은 대개 두 가지다. "저희가 뭘 잘못했을까요?" 그리고 "유전되나요?" 대부분의 선천성 모반은 부모의 잘못도, 물려받은 것도 아니다. 발생 초기 세포에 우연히 생긴 변이로 보통 설명된다. 그래서 항상 태어난 아이의 일정 비율로 발생하는 확율 문제다. 원인은 이토록 '허무'한데 부모는 죄책감을 안고, 아이는 자라면서 그 점을 '나에게만 있는 결함'으로 받아들인다. 질환도 아닌 점 하나가 한 아이와 가족의 마음을 얼마나 오래 갉아먹는지 안다.
문제는 치료비다. 레이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달 간격으로 여러 차례고 점이 크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치료의 대부분은 미용으로 분류돼 건강보험이 닿지 않는다. 비용은 고스란히 부모 몫이다. 아이가 귀하다며 온갖 출산 대책을 쏟아내는 나라에서, 아무 잘못 없이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되찾아주는 일에는 지갑이 닫혀 있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탈모 환자의 고통을 헤아려 보험 적용을 논의하자고 한다. 그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많은 탈모 환자를 배려할 사회라면, 숫자로도 비교되지 않게 적은 이 아이들의 몫도 한 번쯤 계산기에 올려줬으면 좋겠다. 환자 수를 생각하면 재정이 감당하지 못할 규모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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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웃으며 나타난 그 여성이 반가웠던 만큼, 치료를 끝내지 못하고 사라진 아이들의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몇 번 오다가 발길이 끊긴 아이들이 적지 않다. 치료비가 부담돼 그만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어둡다. 부디 어느 병원에서든 이 아이처럼 말끔히 나았기를 바랄 뿐이다.
오타모반에서 해방된 그 여성은 다른 피부문제로 간단한 진료를 보고 진료실을 나서면서 실없는 농담 하나를 남겼다. "이것만 지우면 미스코리아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안 되네요." 그 아이는 미스코리아는 못 되었지만 자라나면서 제 얼굴로 마음껏 웃는 법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점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주눅들지 않는 나라를 꿈꿔 본다. 그리 큰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