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초다수결의제(Supermajority Voting Requirement) 무용론이 나올까

[유효상 칼럼] 왜 초다수결의제(Supermajority Voting Requirement) 무용론이 나올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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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주주가 이사를 선임하고, 경영 성과와 책임을 물어 해임을 결정하는 것은 주식회사 지배구조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다. 그러나 국내 상장사 중에는 다수 주주의 뜻이 하나로 모여도 이사 한 명 교체하기 어려운 곳이 적지 않다. 정관상 이른바 '초다수결의제(Supermajority Voting Requirement)'를 도입해 의결 요건의 장벽을 극단적으로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상법은 이사 선임 요건으로 출석 주주 과반수와 발행주식총수 4분의 1 이상의 찬성을, 해임에는 가중 요건인 특별결의(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를 규정하고 있다. 반면 초다수결의제는 이 법정 의결정족수의 문턱을 정관 개정을 통해 '출석 주주 90%, 발행주식총수 70% 찬성'과 같이 극단적 수준으로 높인 제도다. 문제는 이 결의 요건이 구조적으로 달성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상장사 주총에서 전체 발행주식의 70% 이상이 출석하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상황을 감안하면, 이는 정당한 경영권 '방어'라기보다 주주권 '봉쇄'에 가깝다. 적대적 M&A 세력뿐 아니라 기업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일반 주주의 정당한 감시·감독권까지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조항이 궁극적으로 보호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 명분은 '회사와 주주 보호'지만, 주주 다수가 이사회 변화를 요구해도 이를 반영할 수 없다면 이 조항이 지키는 것은 '기존 경영 구조의 고착화'일뿐이다. 시장과 외부 투자자의 평가 역시 냉혹하다. 이사회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기업에 대규모 장기 투자를 할 기관은 찾기 어렵다. 경영권을 수호하기 위해 세운 장벽이 정작 기업 성장에 필수적인 자본 유입을 가로막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초다수결의제는 국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지만, 지분율이 낮은 중소·중견기업이나 경영권 분쟁에 직면한 일부 기업에서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유지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과 증권사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170곳을 넘었던 초다수결의제 도입 기업은 2026년 현재 53개로 주주 권익 보호 기조와 행동주의 펀드 등의 지속적인 정관 변경 요구, 그리고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을 거치면서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이다.

해외 주요 자본시장에서는 초다수결의제를 경영진의 사적 이익 도모와 지배구조 정체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평가하며, 이를 엄격히 규제하거나 완화·철폐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경우 델라웨어주 회사법 등을 통해 정관상 초다수결의제 설정 자체를 전면 금지하고 있지는 않으나, 시장 참여자와 의결권 자문사들의 견제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ISS나 글래스루이스 같은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기관들은 초다수결의제 조항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안건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며, 기존의 초다수결 요건을 단순 과반수 요건으로 완화하는 주주 제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할 것을 권고한다. 기관투자자와 자문사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넷플릭스(Netflix),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메리어트(Marriott) 등 과거 이 제도를 도입했던 일부 S&P 500 기업들이 정관에서 초다수결의제 조항을 삭제했다.

일본 역시 도쿄증권거래소가 주도하는 '지배구조 코드' 개혁을 통해 경영진이 방어막 뒤에 숨는 행위를 엄격히 제지하고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주주 제안 요건을 법정 기준보다 높이거나 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이른바 '재팬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주원인으로 지목되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수용한 일본 내 기관투자자들은 경영권 방어 목적의 정관 개정에 반대권을 행사하여 자발적인 조항 해제를 이끌어내고 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자본시장에서도 이사 해임 및 주요 안건에 대해 정관으로 법정 요건보다 과도한 정족수를 요구하는 것을 제한한다. 주주의 일반결의를 통한 이사 해임 권한은 주식회사의 기본적 권리로 보장되며, 인위적인 정관 장벽을 통해 주주의 통제권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주주 평등 원칙 및 시장 규율 위반에 가깝다고 평가받는다. 이처럼 해외 자본시장에서 초다수결의제는 회사를 지키는 방어막이 아니라 주주 주권을 침해하고 자본 유입을 가로막는 후진적 지배구조 장벽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코텍을 둘러싼 초다수결의제 분쟁은 현재 국내 자본시장에서 주주권과 경영권 방어 간의 첨예한 충돌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이다. 분쟁의 발단은 회사의 정관에 포함된 극단적이고 비대칭적인 의결 요건에서 비롯되었다. 오스코텍의 정관은 주주가 제안한 이사를 선임하거나 해임할 때는 발행주식총수의 80% 이상이라는 가중된 의결요건을 요구한 반면, 회사가 제안한 이사 선임 안건에는 상법상 일반 요건을 적용하도록 이원화하여 양측 안건 사이에 현격한 요건 격차를 두었다. 이는 사실상 소액주주나 외부 주주가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회에 진입하거나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장벽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가중 요건의 비현실성과 폐해는 실제 주주총회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회사와 주주 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던 임시주총 당시 전체 출석 주식 비율은 약 61.5% 수준에 머물렀다. 통상적인 상장사 주총의 출석률 한계를 감안할 때, 출석한 주주 전원이 100% 찬성표를 던지더라도 정관이 요구하는 '발행주식 80%'라는 문턱을 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즉, 정당한 경영권 방어 수준을 넘어 일반 주주의 감시·감독권과 이사진 교체 권한을 묶어버리는 수단으로 악용된 셈이다.

이와 같은 정관 조항의 위법성을 두고 법적 공방이 벌어졌고, 1심 법원은 회사 제안과 주주 제안 사이의 요건 격차를 정당화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며 해당 정관 조항을 무효로 판단했다. 사법부가 초다수결의제를 주주의 정당한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독소 조항으로 본 것이다. 비록 회사가 이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사건이 항소심에 계류 중이고 형식적인 조항의 효력은 유지되고 있으나, 정관의 가중결의 조항을 삭제하는 안건이 임시 주총 안건에 오르는 등 주주 주권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후속 절차들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 역시 주주의 뜻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이번 분쟁은 국내 상장사들의 불합리한 지배구조 장벽을 정비하고 주주 주권을 바로 세우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

초다수결의제를 폐지하면 경영권 방어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 현행 법제에서도 이미 충분한 제도적 안전판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자본시장법상 5% 대량보유 보고의무(5% Rule) 등에 의해 지분 매집 과정이 시장에 조기에 공개되는 만큼 기습적인 적대적 M&A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둘째, 상법은 이미 이사 해임에 대해 특별결의 요건(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을 둠으로써 경영권 안정과 주주 통제 간의 입법적 균형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셋째,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로 확대됨에 따라, 이사회는 정당한 M&A 제안이나 주주 제안에 대해 전체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대응해야 할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초다수결의제가 내세웠던 본래 목적, 즉 적대적 인수로부터 회사를 지키고 경영을 안정시키는 일은 이미 성숙해진 법제도와 시장 규율, 그리고 주주와의 신뢰 구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남은 것은 정당한 주주 권리를 가로막는 부작용과 자본시장 디스카운트뿐이다. 일부 상장사에 관련 조항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이제는 각 기업이 이 조항의 존속 가치를 냉정히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경영권을 지키는 진정한 힘은 정관 속 비현실적인 문턱이 아니라 시장과의 투명한 소통과 지속적인 경영 성과에서 나온다. 주주의 정당한 판단을 가로막는 장벽을 걷어내고 성과와 책임으로 지지를 얻는 것, 그것이 기업가치와 자본시장의 위상을 함께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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