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공급 정책 반응,이해계층마다 제각각
공공주택 늘려봤자 대다수중산층 소외감
물량 아닌 '체감공급량' 늘려야 정책 성공
사람들은 자신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때 직장인은 대출이자를 걱정하고, 은퇴자는 예금 수입 증대를 기대한다. 똑같은 정책이라도 각자의 경제적 처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정책은 하나지만 해석은 여러 갈래다.
최근 경제학계에서 주목받는 '주관적 거시경제 모형'은 바로 이 점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정교한 경제학 수식이 아니라 자기 경험과 직관으로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판단한다. 정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비추어 해석한다는 얘기다. 이런 주관적 해석은 부동산시장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가령 특정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하면 시장은 오히려 '투자 유망지역' 인증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대출 규제 발표도 자주 굴절된다. 누군가는 집값이 잡힐 것이라 기대하지만, 또 누군가는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정부가 보낸 신호와 시장이 수신한 신호가 서로 엇갈리는 것이다.
주택 공급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공공임대와 공공분양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한다고 하자. 정책 당국은 서민 주거 안정과 내 집 마련 기회 확대를 강조한다. 그러나 소득과 자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중산층은 다른 생각을 한다. "공급이 늘어난다지만 정작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없구나."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외의 신호가 되는 셈이다. 일부 공공분양주택의 경우 특별공급 비중이 75%, 일반공급은 25%다. 일반공급에서도 주택 면적 등에 따라 소득과 자산 기준이 적용돼 일부 고소득자는 청약 기회가 제한된다.
요즘 수도권 주택시장에서 구매력이 강한 수요층으로 주목받는 이들은 30대 고소득 맞벌이 부부, 이른바 '파워 커플'이다. 이들의 매수세가 몰리는 일부 지역에서는 아파트값 상승 압력이 커진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청약 대신 기존 아파트 매매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데는 공공 중심의 공급 정책이 자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인식도 한몫했다.
이런 수요층을 무조건 공공분양의 울타리 밖에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 등을 대상으로 소득이나 자산 기준을 일부 완화하되, 실거주 의무, 전매 제한 등은 엄격히 적용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부가 2023년 민영주택 청약제도를 개편해 투기과열지구 내 전용면적 60㎡ 이하 주택의 추첨제 비율을 60%로 확대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청약가점이 낮은 젊은 층에도 당첨 기회를 넓혀 기존 주택 매매시장으로의 수요 쏠림을 완화하려는 취지였다.
물론 공공택지를 중산층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주거 취약계층을 배려한다는 취지도 훼손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추첨제 비중과 청약 자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은 검토할 만하다. 주택 공급은 수요자가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당첨을 기다릴 이유가 생기면 당장 집을 사야 할 조급함도 줄어든다. 현재 주택 매매시장에 집중되는 수요의 일부를 미래의 분양시장으로 분산시켜 수급의 병목현상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의 PICK
지금 267명 읽는 중
부동산 정책은 때로 사람들의 기대와 행동을 다루는 행동과학의 영역이다. 공급자에게는 그 숫자가 중요하지만 수요자에게는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몇 가구인가'가 더 절실하다. 공급 총량과 수요자의 '체감 공급량'은 다르다. 공급은 숫자로 발표되지만 시장은 기대와 행동으로 움직인다. 결국 정책의 성패는 발표된 물량뿐 아니라 내 집 마련 가능성을 수요자가 실제로 느낄 수 있느냐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