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무책임한 '엄벌행정'⑨한층 강해진 정치권 '엄벌주의'...감독기관 조사 강화로 이어져

이재명 대통령이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엄중 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의 '엄벌주의'도 한층 강해지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와 AI(인공지능) 등 첨단기업 육성을 위한 지원과 시장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를 별개로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기업의 규제 대응 부담이 커지면서 정책 간 '엇박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6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수차례 담합 등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엄중한 제재가 따라야 한다고 경고했다. 불법행위로 얻은 부당이익을 철저히 환수하고 과징금을 대폭 인상하는 한편,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도 관계부처에 거듭 내렸다.
지난 3월 10일 국무회의에서는 기업의 담합과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폭리 등 불공정행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회사가 망하는 수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발맞춰 지난 6월 신고포상금 상한을 폐지하고 과징금의 최대 10%를 포상금으로 지급하도록 제도를 강화했다. 지난달 2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매점매석·담합·주가조작·국고 부정수급 등을 '경제 질서 교란 행위'로 규정하고 "국민의 삶에 매우 큰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보다 집중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당국의 규제와 감독 강화에 더해 과징금 상향을 위한 국회의 입법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이달 11일부터 시행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다. 3년 내 위반행위를 반복하거나 1000만명 이상 대규모 개인정보가 유출된 경우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액의 10%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경영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규모다.
불공정거래 과징금 상향을 담은 이른바 '3법'도 기업들이 주목하는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한 표시광고법·하도급법·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표시광고법 개정안은 과징금 상한을 관련 매출액의 2%에서 10%로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도급법 개정안은 하도급대금 산정이 어려운 불공정행위에 대해 최대 100억원의 정액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역시 과징금 상향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과징금이 싸다'는 이유로 법을 어기는 기업이라면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적다. 문제는 정치권의 경쟁적인 엄벌 기조가 규제기관의 과도한 조사나 처분과 결합할 경우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과징금 규모가 커지면 기업은 규제기관이 손가락만 까딱해도 긴장하는 게 사실"이라며 "조사 검토 소식만 들어도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대응해야 하고, 행정소송까지 진행되면 경영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런 비용이 혁신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정부는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개발(R&D)에 투입해야 할 자금과 인력이 규제 대응과 소송 준비에 묶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징금 액수를 높이는 것만으로 공정한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위법행위로 얻은 이익은 철저히 환수하되 기업이 스스로 피해자를 구제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상생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