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현무가 시청자를 속였다.'
즉흥 여행처럼 연출된 전현무의 '나 혼자 산다' 카자흐스탄 편이 실제로는 사전 기획 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청자들의 배신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 '관찰' 등의 키워드를 앞세우면서 어디까지를 연출로 봐야 할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진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방송을 믿고 본 시청자들이 혼란을 겪고 분노하는 것 역시 무리는 아니다. 과거 '정글의 법칙' '아내의 맛' 리얼을 표방했던 예능 프로그램들도 비슷한 논란을 겪은 만큼 이제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리얼 예능 프로그램, 과연 얼마나 연출될 수 있나. 시청자들은 어디까지 믿고 봐야 하는 걸까.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지난달 21일 방송한 '나 혼자 산다' 661회분이다. 해당 방송분은 전현무가 카자흐스탄에서 단 29시간을 보내는 '무작정 여행기'를 담았다. 새벽 5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하고 텅 빈 로비에서 체크인부터 막히는 등 리얼한 상황이 펼쳐졌다.
방송에서 전현무는 공항 당일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정하고 무계획으로 떠난 것으로 연출됐다. 그러나 방송 직후 비행기표 사전 예매 정황, 현지 운전 절차 문제 등이 누리꾼들에 의해 포착되면서 조작 의혹이 터졌다.
이에 제작진은 "현지 촬영 지원이나 금전적 협찬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완벽한 즉흥 여행이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관광청 측에서 "한국 제작진과 사전에 협의하고 촬영을 지원했다"고 밝히자, 제작진은 뒤늦게 "금전 지원은 없었으나 현지 지자체 및 관광청에 촬영 협조(허가)를 받은 것은 맞다"며 수습에 나섰다.
관련 건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대거 접수돼 심의 안건으로 공식 상정, 심사가 진행 중인 상태다. 시청자들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떠난 리얼 상황'이라고 끝까지 속이려 했던 연출 방식과 해명 과정의 불통 등을 이번 사태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연출은 허용되지만, 연출을 하고도 실제 상황인 것처럼 기만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시각이다. '카자흐스탄 여행을 미리 기획했느냐' 보다는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보며 실제 우연히 발생한 상황이라고 믿도록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설계했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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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제100조 및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시청자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위반 정도에 따라 △권고 △의견제시(이상 행정지도) △주의 △경고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프로그램 정지 등 법정 제재가 내려진다. 법정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시 감점 요인이 된다.
'리얼' '관찰' 등을 앞세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런 문제는 그전에도 여러 차례 발생해왔다. SBS 대표 예능이었던 '정글의 법칙'이 유사한 사례로 꼽힌다. 2013년 '정글의 법칙-뉴질랜드 편'은 출연진이 마치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오지에서 극한의 생존 체험을 하는 것처럼 방송됐는데, 실제 촬영 장소가 일반 관광객도 방문하는 관광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졌다.
방심위는 '정글의 법칙'에 대해 법정 제재인 '주의' 의견을 냈다. 방심위 산하 연예 오락 특별위원회는 '관광지에서 촬영했다'는 사실보다 '실제 관광상품으로 이용되는 것을 마치 오지인 것처럼 연출했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MBN '아내의 맛' 함소원 편에서도 시조부모의 별장이 실제로는 숙박 공유업체(에어비앤비) 매물이었다는 점, 방송 중 전화 통화 내용 설정 등이 연출 및 조작으로 밝혀져 방심위로부터 법정 제재(주의)를 받았다. 이 논란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되기도 했다.

해외 방송 시장에서도 리얼리티쇼의 '과도한 연출'과 '조작 논란'은 늘 화두다. 각국의 방송 관련 규제기관은 시청자 혼란을 막기 위해 명확한 규정을 뒀다.
영국 방송·통신 규제기관 Ofcom은 '프로그램 제작자가 시청자에게 중요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오인 시키는 방식으로 제작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BBC 편집 가이드라인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만들어낸 것을 사실로 제시하거나, 시청자를 의도적으로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일본 방송윤리기구(BPO)는 아예 '야라세(やらせ·사전각본)'이라는 별도의 개념을 규정했다. 모든 사안을 기계적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BPO는 "시청자와 무엇을 어디까지 약속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이것은 실제'라는 신뢰를 형성해놨다면 그 약속을 깨서는 안 된다는 접근이다.
미국은 비슷한 논란을 한차례 겪으면서 '제작자 면책 고지'가 관행화됐다. 제작자가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엔딩 크레딧이나 시작 화면에 '본 프로그램은 연출된 상황이나 편집이 포함돼 있습니다'라는 고지 문구를 명확히 넣는 식이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 체계가 있고 재연·연출에 관한 규정도 있지만 '관찰형 예능의 사전 연출 사실을 시청자에게 어디까지 고지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정한 규정이 해외처럼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