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 소년, 한국GM CEO로 "그들도 나처럼…"

빈민가 소년, 한국GM CEO로 "그들도 나처럼…"

안정준 기자
2012.11.08 11:00

[머투 초대석]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 "비즈니스는 '사람', 인재 키울것"

↑세르지오 호샤 한국 GM 사장이 쉐보레 신차 발표 행사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세르지오 호샤 한국 GM 사장이 쉐보레 신차 발표 행사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빈민가.

가난해서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한 한 소년이 있었다. 부모님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7남매를 챙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년은 14살에 벌써 '공식' 직업을 가졌다. 당시 브라질에서 법적으로 취업 가능한 나이는 14세. 하지만 이미 10살때부터 소년은 일을 시작했다. 계산이 빨랐던 덕에 부동산회사, 군복 납품회사에서 장부 적는 일을 했다.

그는 1974년 15세때 드디어 자기가 축구 다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됐다. 비록 단순 작업이었지만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브라질 법인에 입사한 것.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 간단히 허기를 떼운 뒤엔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는 중고등학교 야간 과정 수업을 들었다. 어린 소년에겐 전쟁 같은 나날이었지만 즐거웠다. 좋아하는 자동차를 가까이하며 기술공의 꿈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21살, 청년이 된 소년은 1979년 제너럴모터스(GM) 브라질 본사에 입사했다. 현장경력과 야간 공부 덕에 제품 개발부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동차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을 직접 손으로 그렸다.

GM에서도 '주경야독' 전쟁은 계속됐다. 1년만에 브라즈 쿠바스대 기계공학과를 조기 졸업했고, 자동차 표면 디자인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1993년 난생 처음 브라질을 떠나 독일의 GM 유럽지부 국제기술개발센터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후 청년은 세계를 무대로 '집시'의 삶을 살게 된다.

한국과 미국, 아르헨티나... "회사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나가 싸울 준비가 돼 있다" 53살. 이제 장년이 된 소년은 GM의 글로벌 경·소형차 생산 핵심인 한국GM의 최고경영자가 돼 돌아왔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의 이야기다.

호샤 사장은 2006년부터 2년간 GM대우의 제품기획 부사장으로 2년간 근무했하기도 했다. 당시 두 딸을 한국에서 교육시켰다. 두 딸은 이때 외국인학교에서 사귄 한국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GM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 역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서울 서초동 서래마을로 다시 돌아온 날 이웃들에게 손수 쓴 편지와 떡을 돌렸을 정도로 '친한파'다.

◇ 낮에는 노동자 밤에는 학생..."비즈니스는 사람이죠"

호샤 사장이 한국에 부임한 올해는 10주년을 맞은 한국GM이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GM의 다음 10년은 모회사인 GM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경기불황과 고유가로 경·소형 모델 개발과 판매가 생존을 위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GM은 GM의 경·소형 모델 연구·생산 중심이다. 가장 민감한 시기에 GM이

이 사람을 한국GM의 수장으로 보낸 이유는 뭘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회사가 실수한 것"이라는 농담으로 말문을 연 그는 주저없이 "인재를 양성하고 인재 풀을 관리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만큼 그가 한국GM의 다음 10년을 그리며 가장 방점을 두는 부분은 '사람'이다. 한국 GM이 글로벌 GM의 핵심 경·소형 모델 연구·생산 중심으로서 지속성장하기 위해선 최고수준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브라질 빈민가 출신인 나도 이 자리에 섰는데, 여러분들이 못할게 뭐 있나요"

호샤 사장이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다.

"저는 아주 낮은 일에서부터 열심히 일했습니다.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무엇을 하든 열심히 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제가 현재의 위치까지 올 수 있도록 기회를 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놓아준 사다리를 통해 빈민가의 한 소년이 한국GM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의 능력 있는 인재를 발굴해 다음 10년을 준비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신 직원들에게도 땀을 요구하고 성과를 강조한다. 엔지니어 출신답게 그는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경영원칙을 갖고 있다.

"저는 숫자에 대해서는 기준이 높습니다. 우리에게 선택은 목표수치를 달성하거나 초과하는 것 두가지밖에 없습니다. 한국GM의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나 열심히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하루 11~14시간 일한다. 주말에도 회사에 있는 날이 더 많다. 한국인들은 호샤 사장이 보기에 자신과 궁합이 딱 맞는 파트너이다.

지금까지 한국을 포함 5개국에서 근무해 본 호샤 사장은 한국 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베트남을 포함, 3개국 3만명의 직원을 총괄하고 있다.

"한국 근로자들은 충성심이 강합니다. 한번 결심을 하면 해내고 맙니다.

제가 우리 회사 어느 팀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면 (달성이나 초과라는) 두 가지 중 하나의 결과물을 내 줍니다. 특히 제품개발 및 디자인 쪽에서 굉장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GM 인력의 51%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이고 평균 연령이 39세에 불과할 정도로 우수한 인력구조는 한국 GM의 최대 장점입니다."

현재 51명의 한국GM 출신 주재원들이 GM이 진출한 11개국에서 일하고 있다.

"젊은 시절 제가 GM을 통해 전 세계에서 꿈을 펼친 것처럼, 젊은 한국인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은 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호샤 사장이 인력양성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여성인력. 딸 둘을 둔 아버지답게 이 부문에선 한국의 현실에 날을 세웠다.

"한국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월드이코노미포럼이 발표한 양성평등지수에서 한국은 2010년 106위, 올해는 108위로 내려갔습니다. 한국GM은 지난 10년간 여성 직원 숫자를 세 배로 늘렸습니다. 17명이 벌써 임원으로 올라왔습니다."

여성인력문제 만은 아니다. 한국과 한국GM이 갖고 있는 약점을 묻자, 호샤 사장은

"'약점(weakness)'이 아니라 (개선할 부분이 있다는 의미에서) '기회(opportunity)'라고 생각한다"고 단어를 바꿔 말했다. 그의 어법을 따르자면 그가 바라보는 '기회'는 한국GM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비용'이다.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치받고 올라오는 경쟁상대는 중국이나 아프리카인데 이들과 비교하면 '비용'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말이다.

"나이브(naive)하게 생각해선 안됩니다. 우리의 비교대상은 호주같은 나라가 아니라 중국이나 이집트, 아프리카 같은 곳입니다. 더 강해지지 않으면 내일은 지금의 모습을 지속하지 못할 겁니다."

◇소주 축구..사람 마음 움직이는 '진심'..."숫자로 말할 것"

사람을 중요시하는 그이지만 직원들, 특히 '노조'라는 조직으로서 접하는 직원들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순탄할 순 없었다.

"제가 한국GM 사장으로서 처음으로 출근하던 날 만난 건 공장에서 시위하고 있는 2000명의 근로자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비즈니스의 바탕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주면 그들도 비즈니스에 신경을 쓰기 마련입니다"

호샤 사장은 한국에 온지 7개월만에 몸무게가 2kg 불어났다.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셨어요, 특히 노조 사람들과..."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브라질 출신답게 그는 지난 5월 경영진 대표로 노조대표 팀과 축구시합에서 현란한 개인기를 보여줬다. 나이는 못 속이는지 얼마 뛰지 않아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했지만 함께 공을 차고 소주를 마시는 외국인 사장과 한국 직원들의 거리감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경영자로 돌아온 그는 한국GM의 수익성을 올려야 하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GM의 주력인 경·소형차는 럭셔리 세단과 비교해 이윤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 지난해 한국GM의 결과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올해의 결과가 작년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매출 관련 수치들이 지난해보다 훨씬 좋습니다."

최근 GM이 KDB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GM지분(17.02%) 전량을 인수하겠다고 밝히면서 GM이 생산라인 및 기술 이전이나 철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었다. 노조와의 임단협 과정에서 호샤 사장이 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외국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며 화를 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오늘날 유럽에서 GM이 파는 차들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 캐나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차들입니다. 한국GM이 담당하는 쉐보레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브랜드죠. 2010년과 2011년, 우리가 쉐보레를 들여온 이후로 쉐보레 만큼 빨리 성장한 브랜드는 없어요. 숫자들을 보면 알수 있지 않나요"

호샤 사장은 "앞으로 10년 뒤인 2020년이면 나는 아마 은퇴했겠지만, 한국GM은 글로벌 GM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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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부 안정준 특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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