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강종 및 산지 나타내는 표식 '불분명'…저품질 저중량으로 국내 건설현장 유통

"아이고 못 보던 상표가 또 늘었네."
지난 13일 인천항의 한 부두에 쌓인 중국산 철강재를 둘러보던 국산철강 유통업체 관계자는 한숨을 쉬었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진서강철 등 2~3개 중국 제조업체가 만든 철강재만 보였는데, 최근 들어 더 많은 제조사 상표가 붙은 H형강과 철근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가 눈으로 확인한 중국 철강사 상표만 7가지 종류였다.
◇국산으로 둔갑한 녹슨 중국산 H형강이 산더미처럼=축구장보다 넓은 부두에는 중국산 H형강이 여러 겹으로 쌓여있었다. 두 대의 지게차는 켜켜이 쌓인 H형강을 쉴 새 없이 트럭에 싣고 있었다. 이날 작은 부두에 쌓인 H형강만 3만톤 가량이었다. 현장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달 초까지 이 공간에는 철근이 잔뜩 쌓여있었다. 보름도 안되는 사이 수 만톤의 철근이 모두 유통되고 새로 들어온 H형강만 산더미였다.
쌓여있는 H형강 중 절반 가량만 강종(철강 종류)과 품질규격을 나타내는 표식이 붙어있었다. 나머지는 표식 없이 임시방편으로 스프레이로 색을 칠해 강종을 구분했고, 적지 않은 형강에는 아예 구분하는 표식 자체가 붙어있지 않았다.
부두 바닥에는 철근 강종을 나타내는 일부 표식이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부두에는 철근이 없었다. 며칠 전 트럭에 실려 나간 일부 철근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유통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띌 정도로 부식된 H형강 표면이 보였다. 손으로 잡아 뜯어도 벗겨질 정도였다. 품질이 떨어져 대형 건설현장에서는 도저히 쓰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이 정도로 부식된 거는 스크랩(고철)으로도 못 쓰겠다"고 혀를 차며 "소규모 빌라 건설 등에 알음알음 쓰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일부 철강재는 표식이 2장씩 겹쳐 붙어있었다. 겉에 나타난 표식은 탕샨야오신이라는 중국 유통업체가 붙여놓은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H형강 표시에 쓰이지 않는 '프라임'이라는 국적불명의 용어가 사용됐다.
겉표지를 떼어내자 허베이진서형강유한공사가 붙인 또 다른 표지가 있었다. 내수 판매용으로 붙여놓은 종이는 생산연월을 2013년 10월 21일로 표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표지에는 생산연월이 쓰여 있지 않았다.
제품 규격(standard)은 KS가 아닌 일본 규격 JIS가 쓰여 있었다. 통상 중국 철강업체들의 주 매출처 중 하나인 동남아지역에서는 JIS가 통용된다. 중국 내수시장 또는 동남아 시장에 쏟아내다 남은 물량을 국내에 유통시키면서 새로이 KS인증을 받지 않고 그대로 들여오는 것. 심지어 JIS규격조차 없이 'Q235B'와 같이 중국 내수용으로만 쓰이는 표기법만 달랑 쓰인 철강재도 적지 않았다.
◇일반강을 특수강으로 둔갑..국산보다 철 약 15% 덜 들어=표지가 붙은 철강재 대부분은 SS400CR 또는 SS400B 등이었다. 크롬 또는 보론을 첨가한 H형강이라는 뜻이다. 미량의 보론 또는 크롬이 첨가된 특수강의 경우 관세율을 낮게 적용받을 뿐더러 중국 정부가 수출 증치세로 9% 가량을 환급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꼼수'는 중국 업체들이 가격 덤핑으로 국내 시장을 교란하는 무기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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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JIS H형강은 KS규격에 비해 철이 덜 들어간다. H형강의 플랜지(세로부)와 웨브(가로부) 이음새의 R값(곡률반지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통상 250×125×6×9㎜ H형강 10m에 대한 KS규격은 통상 296kg의 중량이 기준치이며 5%의 오차가 허용된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산 H형강을 입수해 무게를 재본 결과 14.6%의 중량차가 났다. 같은 크기 국내산 H형강(현대제철)은 1.2% 차이가 났다. 중국산의 경우 10m짜리 H형강에서만 43㎏ 이상 철이 덜 들어간 셈이다.
이날 제조업체, 강종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중국산 H형강은 대형 트럭에 실려 부두를 나서고 있었다. 이 H형강들은 철구조물업체로 넘어가 표면을 밀어내고 도색한 뒤 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해 유통된다.
여러 철 구조물 부속품 중 국산 철강재 일부를 섞어 용접해 '무늬만 국산갈비'처럼 변하는 것이다. 국내산 돼지 갈비뼈에 수입산 돼지고기를 붙여 '국내산 돼지갈비'로 판매하는 것과 유사하다.
트럭이 H형강을 잔뜩 싣고 부두 정문을 나설 때 인천세관 차량이 부두로 들어오고 있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저 양반들 도대체 뭘 보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