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가스의 배신"…조선업 위기의 출발은 美-OPEC 싸움

"셰일가스의 배신"…조선업 위기의 출발은 美-OPEC 싸움

강기준 기자
2016.05.23 09:00

셰일가스 생산으로 LNG선 수주 증가…1년뒤 산유국간 치킨게임으로 해양플랜트 사업 취소 '부메랑'으로

현대중공업이 2012년 수주한 ‘노스랜킨(North Rankin)2’플랫폼의 모습. /사진제공=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이 2012년 수주한 ‘노스랜킨(North Rankin)2’플랫폼의 모습. /사진제공=현대중공업

2014년 미국에서 셰일혁명이 일어났다. 그동안 채산성이 떨어져 외면받던 셰일가스의 채굴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기술과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량이 늘기 시작한 것.

당시 한국에도 호재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조선업계는 셰일가스를 운반하기 위한 LNG선박 수주가 크게 늘 것으로 기대했다. 수주가뭄을 돌파하기 위한 '희망'으로 비쳐졌던 셰일가스가 조선업계 해양플랜트의 '절망'으로 변하기까진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금융위기 후 해양플랜트 붐=2010~2014년은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를 새로운 먹거리로 찾은 시기였다. 이 기간 국제 원유가격은 배럴당 100달러 안팎을 기록하며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자연스레 심해에서 석유를 퍼올리는 해양플랜트 사업 발주가 늘어났다. 한마디로 어디서 기름을 캐도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박 수주가뭄에 시달렸던 조선사들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제일 먼저 해운사들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운사들은 호황기 때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려 배를 발주하고 이를 팔아 막대한 이윤을 챙겼지만, 시장 위축으로 금융권이 대출을 꺼리기 시작하자 조선사에 선수금 지급을 미루거나 발주를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고유가로 떠오른 것이 해양플랜트였다. 조선사들은 이전까지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일부 설계와 시공만 담당하다가 설계부터 설치 및 시공, 시운전 등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턴키 계약을 하게 된다. 턴키 계약은 한번에 조단위의 수주를 기록할 수 있지만 설계 변경 등 변수가 생기면 그에 대한 부담도 조선사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1년만에 벌어진 셰일가스의 배신=2014년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량을 본격 늘리고 원유 수출 금지 조항을 해제키로 하면서 LNG선 발주가 늘었다.

조선업계는 셰일가스를 운반키 위한 선박 수주가 늘어나며 수혜를 입는 것처럼 보였다.삼성중공업(29,050원 ▲350 +1.22%)은 2013년 조선 빅3 중 가장 먼저 셰일가스 전용 LNG선 2척을 수주했고, 이어 2014년에는 LNG선을 총 5척 수주하며 10억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현대중공업(419,500원 ▲11,500 +2.82%)은 2014년 LNG선 6척을 약 13억달러에 수주했다. 같은 기간대우조선해양(130,000원 ▼1,900 -1.44%)은 LNG선만 37척을 수주하며, 개별업체로는 처음으로 LNG선 30척 이상 수주에 성공했다.

하지만 셰일가스가 줬던 혜택은 거기까지였다. 2014년 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도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을 고사시키고 에너지 시장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감산을 거부하면서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세계 경기 둔화와 원유 공급과잉으로 유가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게 된다. 지난 2월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선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셰일가스로 촉발된 산유국간 치킨게임으로 저유가가 계속되자 지난해부터 메이저오일 업체들은 기름을 뽑을수록 손해 볼 게 뻔한 해양플랜트 사업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월 노르웨이 시드릴로부터 수주했던 5억7000만달러 규모의 드릴십 프로젝트 계약 취소를 통보받았다. 이어 10월에는 노르웨이 프레드올센으로부터 수주한 6억2000만달러 규모의 드릴십 계약이 해지됐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6억달러 규모 드릴십 계약이 지난해 7월 해지됐고, 지난 3월에는 덴마크 동에너지로부터 수주했던 2억달러 원유생산설비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삼성중공업도 지난달 에너지기업 셸과 체결한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3척 건조 계약이 해지됐다. 계약금액만 47억달러(약 5조3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사업이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PDC와 체결했던 5억달러 규모 드릴십 계약도 취소됐다.

◇조선업계 호황기 다시 찾아올까?=최근 조선 '빅3'가 나란히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설비규모를 줄이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2~3년만 기다리면 다시 호황기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3사 체제를 유지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조선업계에서는 에너지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예전같은 호황기가 다시 올지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 시장이 기존 OPEC 중심에서 풍부한 셰일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람코(Aramco)를 상장하기로 하면서 저유가 기조는 당분간 풀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람코는 상장 후 2조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미국 애플의 4배 규모이다. 업계에서는 사우디가 계속된 유가 싸움에 대비한 실탄 확보를 목적으로 상장을 계획 중이라고 보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3년 후 업황이 좋아질 것으로 보이면 이미 선주사로부터 발주가 늘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셰일가스 생산으로 에너지 시장이 재편되며 다시 유가가 100달러까지 치솟는 등 호황기가 찾아올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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