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 부활의 조건]①사별 100억불 수주시대와 작별…국영 대우조선 지렛대로 합종연횡 목소리

한국 조선업이 혼돈의 시간을 지났다.
2007년 이른바 조선 '빅4'(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STX조선해양)의 시대는 화려했다. 4개사가 약 675억 달러(약 73조원) 어치의 배를 수주했다. 자랑스러운 수출전사이자 달러박스로 불렸다. 그러나 이듬해 금융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STX조선이 100억 달러 수주대열에서 이탈했고 강건했던 대오는 균열을 일으켰다.
2011년 재편된 '빅3'는 살아남은 자들의 잔치를 열었다. 각사의 수주 합계가 480억 달러(약 52조원)를 넘겨 옛 영화(榮華)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수주들은 '독이 든 성배'였다.
금융위기로 얼어붙었던 시장이 녹아내린 후였다. 3사는 앞다퉈 저가수주 소위 덤핑(dumping)을 자초했다. 게다가 1건당 조단위 프로젝트로 황금알을 낳을 줄로만 여겼던 해양플랜트 수주는 2~3년이 지나 출선 시기에 이르러서는 각자 수천억원씩 적자를 남긴 원흉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해양플랜트에 관한 사업성 예측의 실패로 빚어진 실손해액이 3사 합계 10조원을 넘는다고 지적한다.
이런 가운데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사실상 정부가 오너십을 가진 대우조선해양은 명목상으로는 2007년부터 새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6조~8조원을 호가하던 당시엔 아까워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팔지 못했고 이는 끝내 계륵(鷄肋)이 됐다.
주인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사이 모럴해저드가 생겨났고 이로 인한 부실이 5조원 이상 쌓였다. 분식회계 논란은 전직 사장 2명이 구속되고 지난 3년여간 7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자하고 나서야 다소 진정되고 있다.
시장에서의 실패로 인한 구조조정이 5만여명의 근로자 생존권을 이유로 정부자금 투입과 인위적인 수명연장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자 불똥은 경쟁사로 튀었다. 시장에서 살아남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추가적인 손해를 낸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6년과 올해 연거푸 주주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우조선이 빅배스(big bath accounting)를 했다면 삼성은 스몰 배스를 여러 차례 했고, 결국은 차입금 상환과 자구계획 이행을 이유로 증자를 한 것이다.
여러 사업부가 뭉쳐있던 현대중공업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손해를 떠안아줄 사업들이 독립하자 결국 올해 증자를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3사의 손실은 엇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오너십에 따라 시기를 달리해 손해를 확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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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선업은 이제 위기를 벗어난 듯 보이지만, 실제 위기는 지금부터다.
대형사는 3년째 수주절벽으로 부진에 빠져있다. 2015년 4100만CGT(선박 무게에 부가가치 계수를 곱해 산출한 무게 단위)였던 전세계 발주량은 2016년 1360만CGT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지난해 2610만CGT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62억원이라는 명목상 이익을 냈다. 흑자를 기대했던 삼성중공업은 5242억원의 적자로 충격을 줬다.
한 개 대형사가 한해 100억 달러씩 수주해 도크(dock, 선박 건조를 위한 대규모 웅덩이 시설)를 가득 채우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누리던 시장을 중국과 싱가포르 등 신흥 경쟁자는 물론 일본과 같은 전통적인 강국이 차지하고 있어서다. 자만한 지난 20년간 한국 조선소는 늙고 병들었다.
문재인 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중소형 조선사인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일단락했다. 하지만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대형사의 빅딜이 전제되지 않는 구조개편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STX 등은 지난 문제이고, 실제는 빅3라 불리는 현대 대우 삼성의 제살깎기 경쟁이 여전하다. 전세계 발주량이 늘지 않으니 서로 생존을 위해 마진이 희박한 수준에서 경쟁 수주가 치열한 것이다.
국영(國營)인 대우조선을 지렛대로 활용해 조선업의 큰 틀을 2강 체제로 바꾸는 것이 유일한 중장기 대안이다. 전문가들은 IT 전자산업에 집중하려는 삼성이 삼성중공업의 계열 외 매각이나 대우조선과의 주식스왑을 통한 경영권 처리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삼성이 두 차례나 증자에 응한 주주들의 가치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지연할 경우 대우조선 경영권 매각이 적극적으로 진행될 여지도 있다. 새로운 조선업 경영주체를 찾아 합종연횡을 가속화할 시나리오가 어떤 식으로든 유효하다는 지적이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국민과 정부 지원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상황이라 사명감이 크다"며 "상선 분야의 경쟁력을 단단하게 확보해 내실 있는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첫번째 목표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새 주인을 찾는 데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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