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인력난' 韓 반도체, 新 인재가 온다②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전문인력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양산 노하우를 하나씩 모아가며 성장한다. 전문인력과 그 인력이 만드는 기술 노하우에서 이른바 '축적의 시간'이 절대적인 산업이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축적의 시간' 저자)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첫째도, 둘째도 인재 확보다. 반도체 현장에서 체감하는 인력 확보 상황은 필요인력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극심한 인력 기근을 호소하던 국내 반도체업계가 대학 전공학과 신설을 계기로 인재 조기 교육에 재시동을 건 것은 대한민국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꼽히는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길어야 5년, 짧게는 3년 후도 자신할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반도체 관련 중견·중소기업은 물론, 삼성전자(188,200원 ▼3,400 -1.77%)와 SK하이닉스(924,000원 ▼17,000 -1.81%)에서도 학사부터 석·박사에 이르기까지 학위 수준에 상관없이 "일할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3년 안에 최소 7000명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연간 1500명 수준의 인력 육성 계획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설계(팹리스) 분야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만 해도 매년 300명에 육박하지만 이 분야의 석·박사 졸업생은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반도체업계 인사들을 만나면 십중팔구 꺼내는 얘기가 정부의 안일한 대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성과를 내면서 '잘 되는 산업은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정책 판단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부 소관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사업 지원예산은 2009년 1003억원에서 2018년 3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10조8000억원에서 19조7000억원으로 2배 늘어나는 동안 반도체 지원예산은 줄곧 뒷걸음질친 셈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임기 초반 1~2년 동안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올 1월 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작성한 '시스템반도체 핵심인력 양성' 문서에는 "2017~2018년 반도체 분야의 정부 신규사업이 전무하다"는 기록이 나온다.
R&D 자금이 줄다 보니 대학들은 반도체 분야 연구를 꺼리고 그 결과 인력 양성을 담당할 전문가가 부족한 악순환이 이어졌다. 서울대가 배출한 반도체 석·박사는 2006년 97명에서 2016년 23명, 2017년 43명으로 줄었다. 반도체 분야 우수논문은 2014년 중국에 따라잡힌 상태다. 2017년 우수논문 수가 중국 51편, 한국 19편으로 2배 이상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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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해외로 넓히면 '반도체 굴기(일어섬)'를 선언한 중국의 추격을 두고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설비 부문의 자본력보다는 인재 육성에 쏟아붓는 투자금의 규모다. 중국 정부는 2019년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샤먼대 등과 함께 반도체 인재 육성을 위한 '국가 반도체산업·교육 통합 혁신 플랫폼'을 발족, 대학마다 수백억원을 투입해 매년 수천명의 반도체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인접한 스탠퍼드대는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2008년 141명에서 2019년 739명으로 늘렸다. 이 대학에서 양성된 인력은 퀄컴, 애플 등 시스템반도체 업체로 상당수 취업한다.
미국과 중국이 최근 반도체에 '올인'하는 것은 단순히 자율주행차, AI(인공지능), 빅데이터로 개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에는 영토나 군사력, 화폐, 무역 규모가 국가의 우열을 판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 조만간 반도체로 대표되는 IT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구조, 국가간 서열을 좌우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황철성 서울대 교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사실상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착수한 것도 세계 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 분야에서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미국과 중국이 냉전시절 핵개발에 버금가는 반도체 패권 전쟁을 가속화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이제라도 정부가 반도체 산업 뒷받침에 나섰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보인다. 다만 미국이나 중국, 유럽과 비교하면 좀더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R&D 지원예산 확대나 반도체학과 신설 등 정부 정책이 상당히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며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전문인력이라는 점에서 산·학·관이 모처럼의 협력 강화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