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강 유역에 자리한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에서는 벌써 추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5월 상순에 모를 심어 8월 중순부터 수확 가능한 조평벼 품종이 심어진 이곳에는 일찍이 고개를 숙인 벼들로 가득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이삭을 훑는 콤바인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삐 움직이는 콤바인 위로 태양광 패널들이 늘어서 있었다. 농사와 태양광 발전이 동시에 이뤄지는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였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농산물 생산과 태양광 발전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 시설이다. 제한된 면적에서 발전 수익도 기대할 수 있어 농가의 소득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화솔루션 큐셀부문(한화큐셀)과 한국에너지공단은 지난 1일 이곳 발전소에서 영농형 태양광 발전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농어촌 상생 협력기금을 조성해 발전사업을 진행한 한국남동발전, 해당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시공협력업체 클레스(KLES), 영농형 태양광 표준화 국책과제를 연구하고 있는 정재학 영남대 교수팀 등이 참석했다.
영농형 태양광 발전은 농사를 지으며 발전을 병행하는 구조다. 태양광 패널이 볕을 가려 작물의 식생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생육에 필요한 포화 광합성량인 광포화점을 초과하는 태양광을 이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벼의 광포화점은 50klus(킬로럭스)다. 이를 초과한 빛은 식생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표면의 수분을 증발시켜 생육에 악영향을 준다. 영농형 태양광은 모듈의 크기·배치·각도 등을 조절해 작물 재배에 적당한 일조량을 가한다. 또한, 패널을 높게 설치해 대형 농기계 작업도 가능하게 설계됐다.
농가 수익성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는 농사를 짓기 어려운 고령의 농민 농지를 임대해 연간 15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2019년 4월 준공한 뒤 현재까지 농사를 중단한 토지주는 임대수익을 거뒀으며,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은 전력 판매 수익으로 마을 진입로 확장, 마을회관 보수, CCTV 설치 등을 실시할 수 있었다.
작물 생산량도 기존 농지의 80% 이상을 유지한다. 수확량이 일부 감소했지만 대신 이를 웃도는 발전 수익이 창출된다. 정재학 교수팀에 따르면 같은 면적의 토지에서 벼농사만 지을 때보다 영농형 태양광을 도입했을 때의 수익이 3~5배에 이른다. 이곳 발전소와 같은 2300㎡(약 700평) 면적에서 벼농사만 지었을 때 기대되는 농경 수익은 240만원이지만, 100kW(킬로와트) 발전소를 건설했을 때 예상되는 소득은 787만~1322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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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형 태양광은 유럽·일본 등지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각국 정부도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국토 면적이 작고 대부분이 산간지역인 한국에도 적합한 발전 모델이라는 평가지만 보급이 쉽지 않다. 현행 농지법 시행령에서 타 용도 일시 사용 허가기간을 8년으로 묶어뒀기 때문이다. 25년 이상 사용 가능한 태양광 패널도 설치 8년 만에 철거해야 한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탄소중립뿐 아니라 식량·에너지 안보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화큐셀은 국내 전체 농경지 가운데 5%만 영농형 태양광을 도입해도 국내 인구 90%가 연간 사용할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16년 250만명이던 국내 농가인구는 지난해 220만명으로 5년 만에 12% 감소했다. 경작되는 농지 면적도 2011년 169만ha(헥타르)에서 2020년 156만5000ha로 8% 감소했다. 농가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영농형 태양광 발전은 농가의 수익성 증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농가인구 유입과 20% 미만인 현행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기존 농지가 태양광 발전 부지여서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도 막을 수 있다.
한화큐셀 관계자는 "현행 농지법이 영농형 태양광 사업의 경제적 비효율성을 초래해 발전 단가를 올려 재생에너지 전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효율적인 국토 활용과 농가 소득의 제고 등을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승남 의원은 타 용도 일시 사용 허가기간을 20년으로 하는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지난해 11월 국회에 발의했다. 앞서 2020년 6월 박정 의원과 지난해 3월 위성곤 의원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정안과 신규 법안을 발의했다. 복수의 관련 법 제·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지만 논의가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영농형 태양광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여론 때문이다. 영농형 태양광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초기에는 경작물 위에 패널이 설치돼 식생에 방해를 줄 것이란 우려가 컸다. 농민단체에서는 난개발에 따른 농지 훼손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연구를 통해 관련 우려가 불식된 만큼 관련 법 제·개정 논의가 본격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관리·운영을 맡고 있는 이태식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장은 "수익금으로 마을의 행정업무를 보완하고 복지 혜택을 늘려 주민 만족도가 높다"면서 "영농형태양광 사업을 위한 금융 지원책 등을 더욱 늘려 농민의 편의와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농촌 재생에너지 전환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재열 한화큐셀 한국사업부장(전무)은 "영농형태양광 활성화는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책"이라며 "한화큐셀은 영농형태양광에 적합한 모듈을 제작·공급해 시장 활성화를 이끄는 한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과 기후 위기 대응에도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