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해서가 아닌 시황때문" 임원세미나서 강조
위기경영 기조 지속… 본원 기술력 개선 필요성 주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최근 실적급등에도 불구하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역대 최고수준의 영업이익과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잘해서가 아니라 시황 때문"이라며 긴장감을 놓지 말라고 주문했다. 현상황이 AI(인공지능) 산업발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 덕분인 만큼 장기적 안목으로 본원적 기술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주부터 전계열사 임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신년 임원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이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공유했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임원 세미나는 영상 상영과 외부전문가 강연 등으로 이뤄진다. 해당 영상은 연초 이 회장과 사장단의 만찬에서 처음 공개됐다. 성우가 말하는 형식으로 이 회장의 직접 발언은 소개되지 않지만 사장급을 포함한 전체 임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통상 경영전략 등과 관련한 이 회장의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복수 관계자 등의 말에 따르면 올해 영상에는 위기론을 강조한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을 포함해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AI 대전환의 시대적 중요성 등이 포함됐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갈등구도 속에서 고환율 장기화와 관세정책 문제, 산업 전반에 걸친 중국의 거센 추격·추월 등이 부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대회장의 '샌드위치론'도 소환됐다. 이 선대회장은 2007년 당시 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단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쫓아오는 중국과 앞서가는 일본 사이에 놓인 샌드위치 신세라고 밝혔다. 영상에서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샌드위치"라며 위기의식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자만을 경계하는 이 회장의 뜻을 강조했다. "최근 실적이 좋아진 것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황 때문"이라는 냉정한 현실인식도 밝혔다. AI부문에도 '미국은 날아다니는데 우리는 아직 기어다닌다'는 의미로 더욱 기술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자성이 포함됐다.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이 없고 남들이 만든 AI를 가져다가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수준"이라는 혹평도 뒤따랐다.
이같은 경영방침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위기경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삼성은 지난해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9년 만에 임원 대상 신년 세미나를 재개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최고수준의 위기의식과 자기반성을 나타냈다. 이 회장은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은 보이지 않는다" "메모리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AI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다"며 강력히 경고했다.
이후 1년 만에 실적은 수직상승했지만 근본적 경쟁력보다는 업황개선에 올라탄 영향이 크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잠정실적 매출 93조원, 영업이익 20조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2018년 3분기에 세운 17조6000억원의 기록을 7년여 만에 갈아치우면서 최초로 20조원대에 올라섰다.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전반적 메모리반도체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결국 일반 D램이나 낸드까지 일제히 가격이 뛰었기 때문이다.
불과 2년 전인 2023년만 해도 삼성전자 반도체는 1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지만 단숨에 '분기 20조원 흑자'로 돌변하며 주가도 15만원을 돌파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단기간에 주가가 5만원에서 15만원으로 3배 급등했는데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3배 강해진 건 결코 아니다"라며 "이재용 회장의 이번 메시지는 한국 대표기업의 최고책임자로서 불안감과 책임감에서 나오는 진정성 있는 주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 기업이 샌드위치 신세기는 하지만 동시에 미국 트럼프행정부의 강력한 대중 견제로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측면도 있는데 이때를 활용해 빠르게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