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못 낸 전기차, 중국은 '저가' 공세...위기의 K배터리, 돌파구는

속도 못 낸 전기차, 중국은 '저가' 공세...위기의 K배터리, 돌파구는

김지현 기자, 최경민 기자
2026.03.21 07:30

[배터리체크포커스]<1>ESS 골드러시 (中)

[편집자주] 배터리 산업은 한 때 '제2의 반도체'로 여겨졌다. 기업들은 수십조원을 투자해 전세계에 생산거점을 확보했다. 하지만 전기차 수요 부진과 중국의 굴기로 K배터리 밸류체인은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배터리 산업의 현주소와 미래 가능성을 진단해본다.

5년간 90조 투자했는데..위기의 K배터리 전기차·ESS '투트랙 돌파'

글로벌 ESS 수요 전망/그래픽=윤선정
글로벌 ESS 수요 전망/그래픽=윤선정

'밸류시프트(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슈퍼사이클(최주선 삼성SDI 대표)·데스밸리(이용욱 SK온 대표)'

최근 국내 배터리 3사 CEO(최고경영자)가 진단한 업계의 분위기다.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일관된다. 현재의 위기 국면(데스밸리)에서 배터리 대응 능력을 강화해(밸류시프트) 향후 다가올 업황 반전에 대비해야 한다(슈퍼사이클)는 메시지다.

2020년대 초반만 해도 K배터리에 대한 기대감은 남달랐다. '제2의 반도체'라는 수식어까지 붙으며 대표적인 미래 먹거리로 꼽혔다. 이에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공격적으로 설비투자(CAPEX)를 확대하며 국내는 물론 북미와 유럽, 중국 등에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실제로 최근 5년(2021~2025년)간 3사의 설비투자는 LG에너지솔루션 44조410억원, 삼성SDI 19조486억원, SK온 26조8122억원 등 90조원에 육박한다. 지금쯤이면 수조원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으로 쏟아부은 돈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배터리 3사의 주요 공략 지역인 북미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고, 중국 기업들이 저가 경쟁력을 앞세우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삼성SDI(400,500원 ▼2,000 -0.5%)와 SK온 모두 지난해 연간 기준 영업손실을 냈다. LG에너지솔루션(375,500원 ▲4,500 +1.21%)도 AMPC(첨단생산세액공제)를 제외하면 적자였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일부 완성차 기업들이 배터리 계약 취소를 통보하고, 합작공장 청산까지 나서면서 위기론이 증폭됐다.

이런 상황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는 국내 배터리 업계에 반전의 기대감을 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ESS 배터리에 약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금지 외국기업(PFE) 요건도 올해를 시작으로 점차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는 중국산 ESS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노 차이나 존'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 역시 공공입찰이나 미국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ESS 프로젝트에서 중국 기업들을 배제하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은 IAA(산업가속화법)와 CRMA(핵심원자재법) 등을 발표했다. 두 법안 모두 전략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의 역내 공급망을 강화해 유럽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업계에서는 ESS 시장의 성장이 폭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힘입어서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약 399GWh(기가와트아워)였던 ESS 시장 규모는 2030년 876GWh, 2035년 1232GWh에 달할 전망이다. SNE리서치는 2024년만 해도 2035년 ESS 시장 규모가 현재 전망치의 절반(618GWh)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지금의 위기는 곧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ESS 역량까지 갖춘다면 '투 트랙' 전략을 가져갈 수 있어서다. 특히 자율주행을 중심으로 한 전기차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이 도래할 경우 배터리 기업은 설비를 조정하며 유연하게 시장에 대응하는게 가능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에너지나 AI 관련 기업들이 한국을 찾아 배터리 공장을 방문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며 "전기차에서 ESS용으로 생산라인을 전환하는 것에는 비용이 크게 들지 않기 때문에 시장 맞춤형 대응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배터리 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휴머노이드·우주선에도 필수

로봇용 배터리 시장 전망/그래픽=이지혜
로봇용 배터리 시장 전망/그래픽=이지혜

배터리 산업의 가치는 전기차와 ESS(에너지저장장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UAM(도심항공교통) 등 미래 전략 산업 육성을 위해서도 배터리 밸류체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19일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용 배터리 시장은 2030년 이후 본격 개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수요가 미미한 수준에 머물다가 2030년 1.37GWh(기가와트아워), 2035년 17.67GWh, 2040년 138.29GWh로 급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UAM용 배터리에 대한 시장 전망 역시 비슷하다. 2030년 3.7GWh를 거쳐 2035년에는 68GWh까지 그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AI(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따라 로봇과 UAM의 가치가 치솟을수록 배터리 산업에 대한 주목도도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가볍고 출력이 높은 배터리가 쓰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고부가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다. 실제로 휴머노이드나 UAM에는 전고체·리튬메탈 등 차세대 배터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이미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517,000원 ▼5,000 -0.96%)그룹의 '아틀라스', 테슬라의 '옵티머스' 등 휴머노이드에 국내 기업들이 배터리를 공급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LG에너지솔루션(375,500원 ▲4,500 +1.21%)의 경우 총 6개 휴머노이드 기업에 배터리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 배터리 3사 중 가장 빠른 2027년 전고체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삼성SDI(400,500원 ▼2,000 -0.5%) 역시 휴머노이드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현대위아(84,900원 ▲700 +0.83%)의 물류로봇(AMR)에는 SK온의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가 탑재되고 있다.

배터리의 활용 범위는 선박과 방산, 항공우주 등까지 넓어질 수 있다. 선박 부문의 경우 IMO(국제해사기구)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황이어서 각 조선사들이 전기 추진선 연구에 나선 상황이다. 2024년에는 스페이스X가 LG에너지솔루션에 '스타십' 우주선에 들어갈 보조 동력 배터리와 전력 공급 배터리 납품을 문의하기도 했다.

이같은 미래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보안 문제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에 K배터리가 중국 기업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휴머노이드 배터리 기술도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라면서도 "사이버 보안 관점에서 중국을 제외한 휴머노이드 업체는 탈중국 배터리 공급망을 요구할 수 있어 한국 배터리 업체는 신뢰 기반의 공급망 프리미엄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UAM 배터리 시장 전망/그래픽=김지영
UAM 배터리 시장 전망/그래픽=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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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부 김지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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