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속도조절론, 엇갈린 시선] (종합)
◇AI 공급망 관련 주가 타격

미국에서 '인공지능(AI) 속도조절론'이 급부상한 가운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등 반도체 관련주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반도체와 AI 공급망 관련주가 단기적으로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장기적인 성장 궤도가 유지되는 만큼 여파가 장기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장 전략가들은 AI 개발 신중론이 반도체 제조업체와 AI 공급망 관련주에 대한 단기 매도세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첨단 AI 모델 개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관련 기업 실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단 우려가 커질 수 있어서다. 앞서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안전 확보 속도가 AI 능력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AI 개발 속도를 조절하자고 제안했고 오픈AI의 샘 올트먼과 일론 머스크 등도 공개적으로 호응했다.
다만 이번 악재가 AI 투자의 장기 성장세를 꺾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게리 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번 발언이 단기적인 주가 압박을 부를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AI 투자 흐름을 흔들 가능성은 낮다"면서 "AI 개발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상황에서 생태계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현재 순위에 만족하고 속도를 줄이려 할지는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속도 조절론이 기업들의 인프라 비용 부담을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글로벌X 매니지먼트의 빌리 렁 투자 전략가는 "오히려 개발 타임라인이 연장되는 효과가 있다"며 "AI 상용화와 보급이 계속 확대되는 가운데 신기술 개발 속도가 살짝 느려진다면 이는 인프라 구축 단계에서 이미 구축된 기술로 수익을 창출하는 단계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삭소마켓의 차루 차나나 수석 투자전략가는 "안전장치 강화 요구는 사이버 보안이나 AI 모니터링 분야에서 새로운 지출과 매출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개발 속도가 다소 완화되더라도 컴퓨팅 파워 수요는 지속되며 이는 오히려 AI 산업의 장기적 수익 창출 구조를 한층 더 견고하게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올트먼 오픈AI CEO는 포천 인터뷰에서 "(AI의) 안전과 관련해 벌어지는 상황들을 고려할 때 지금은 상장에 적절치 않은 시기"라며 올해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도 미 방송에 출연, "당장 오늘 공포에 떨어야 한다거나 모든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면서도 "우리가 출시하는 모든 세대의 모델이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vs오바마 전현 대통령 입장차= 주요 AI 기업들은 공동 시험·감사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표준기구 설립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IT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지난 7월 이후 앤트로픽·오픈AI·구글의 CEO 아래 직급으로 구성된 실무그룹이 정기적으로 회동해 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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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는 아모데이 CEO 등의 AI 속도조절과 외부통제 도입에 동의하면서도 소수의 주체가 AI 감시·통제를 맡아선 안 된다며 "학계를 포함해 생태계와 국가, 분야 전반에 걸쳐 폭넓은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나델라 CEO는 소셜미디어(SNS) 엑스(X)에서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향한 어떠한 여정도 '우리가 구축하는 AI가 인류에 도움이 되지 않고 인간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면 추구할 가치가 없다'는 핵심 원칙에 뿌리를 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초지능 개발의 대전제로 '인간의 통제'와 '이익 공유'를 제시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국 민주당의 비공개 모금행사에서 "AI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 위험해질 수 있다"며 민주당에 AI 대응을 주요 정치 의제로 삼을 것을 촉구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3일 아일랜드 방문 일정중 "부각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부각하는 부정적 세력이 너무 많은데 그들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부각하고 있다"며 속도조절론에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현재 AI 분야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며 "AI에서 승리하는 자가 최종 승자가 된다"고 강조했다.
◇수요 강세, 당분간 지속

AI(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확대에 힘입어 글로벌 서버 시장 매출이 분기 기준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섰다. AI 연산을 위한 고성능 부품 탑재가 늘면서 서버 평균판매가격(ASP)도 큰 폭으로 뛰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넘어 DDR(더블데이터레이트)5와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전반으로 수요가 확산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기업에도 우호적인 업황이 지속될 전망이다.
14일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서버 시장 매출은 1663억달러(약 223조4900억원)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분기 매출이 2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 최대였던 지난해 4분기 1253억달러(약 168조4700억원)보다도 32.7% 증가한 수치다.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기업)와 CSP(대형 클라우드서비스 사업자)의 AI 인프라 투자가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올해 2분기 글로벌 서버 출하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15.4% 증가한 반면 매출 증가율은 52%에 달했다. 단순히 서버가 많이 팔린 것을 넘어 서버 한 대의 ASP가 크게 높아진 셈이다.
GPU(그래픽처리장치) 가속 서버가 대표적이다. GPU 가속 서버 ASP는 1년 전보다 43.6% 상승한 17만200달러(약 2억2900만원)를 나타냈다. ASIC(주문형 반도체) 등을 탑재한 기타 서버 매출도 같은 기간 237.6% 급증했다. 엔비디아 GPU 중심이던 AI 인프라 투자가 빅테크의 자체 AI 가속기 등으로 다변화되면서 서버 고사양화가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버의 '몸값'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장세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AI 서버는 HBM뿐 아니라 데이터 처리를 지원하는 서버용 DDR5,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는 eSSD 등 고부가·고용량 메모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콜레드 크레스 엔비디아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최근 진행한 2027 회계연도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오늘날 메모리 부족은 상당 부분 AI 구축 자체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메모리 가격 상승은 서버 ASP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이다. IDC는 "서버 공급사들은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과 부품 할당량 증가를 서버 가격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메모리 제조사와 장기공급계약(LTA)에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빅테크와 LTA를 체결한데 이어 추가 5개 대형 고객사와도 협상 완료 단계에 접어들었다. 통상 5년 계약으로 매년 계약 기간을 1년씩 늘리는 '롤링' 방식이 적용된다. SK하이닉스 역시 핵심 고객을 포함한 10여개 고객과 LTA를 체결한 상태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메모리 가격 강세가 맞물리면서 양사의 실적 추정치도 올라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가 평균전망치)는 656조5054억원으로 지난해 양사 합산 영업이익(90조8074억원)의 7배를 웃돈다.
업계 관계자는 "AI 서버는 기존 서버보다 탑재되는 메모리 용량과 제품 사양이 높아 서버 시장의 성장이 곧 고부가 메모리 수요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라며 "AI 투자가 지속되는 한 HBM뿐 아니라 DDR5와 eSSD 등 서버용 메모리 수요도 견조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AI 인프라 사업 호조

LG전자가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 엔비디아로부터 액체냉각 핵심설비의 추가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고성능 AI 서버의 발열 증가에 대응해 냉각 솔수션 경쟁력을 높이고 수조원 규모의 추가 수주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1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1MW(메가와트)급 '냉각수 분배 장치(CDU)'에 대한 엔비디아 최종 품질 인증을 진행 중이다.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성능 기준에 맞춰 자체 시험을 수행하고 관련 데이터를 제출한 상태로 전해졌다.
LG전자는 지난 7월 600kW(킬로와트)급 CDU에 대해 엔비디아의 최종 품질 인증을 받았다. 1MW급 인증에 이어 CDU 인증 용량을 2.5MW·4MW급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1.4MW CDU 개발을 사실상 마무리했으며, 2.5MW·4MW급 제품은 연내 출시와 인증 절차 착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CDU는 AI 데이터센터 액체냉각의 핵심 설비다. 최근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와 HBM(고대역폭메모리) 등의 성능이 높아지면서 AI 서버랙(Rack) 하나가 소비하는 전력과 발생하는 열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존 공랭 방식만으로는 고성능 AI 서버의 발열을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GPU와 CPU 등 고발열 칩에 콜드플레이트를 부착해 냉각수로 열을 직접 흡수하는 '다이렉트 투 칩(Direct-to-Chip·DTC)' 액체냉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CDU는 DTC 시스템에서 서버로 냉각수를 보내고 칩에서 열을 흡수해 뜨거워진 냉각수를 회수한 뒤 다시 식혀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CDU는 용량이 클수록 더 많은 열을 처리할 수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2.5MW급 CDU가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베라 루빈 NVL72'는 서버랙당 최대 330kW 수준의 전력을 사용한다. 이는 전 세대 모델보다 약 2.7배 높은 수준이다.
LG전자는 대형 칠러(Chiller)와 공조장비를 이용해 데이터센터 공간을 냉각하는 기존 사업에서 서버랙과 칩 주변의 액체냉각 영역까지 열관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칠러에서 CDU, 콜드플레이트까지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 전반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엔비디아의 AI 팩토리 인프라 공지에 따르면 CDU 검증을 받은 기업은 전 세계 20여곳에 불과하다. 검증 절차를 통과했다는 것은 엔비디아 AI 서버에 요구되는 냉각 성능과 안정성 등의 기술 요건을 충족했다는 의미가 있다. 향후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업체) 등을 상대로 수주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셈이다.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시장은 연평균 약 26% 성장해 2034년 약 1335억달러(약 185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도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를 대상으로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 수주를 확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AI 데이터센터 냉각 관련 수주는 6000억원을 넘어섰고 연말까지 수조원 규모의 추가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의 대부분이 엔비디아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엔비디아의 인증이 갖는 의미는 크고, 요건도 까다롭다"며 "서버랙과 데이터센터 설계 업체는 대부분 인증제품을 사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