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관점을 저 멀리 별 너머로 확장해보자. 휴머노이드가 넘는 문턱은 공장의 문만이 아니다. 그 몸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곳은 인간의 몸이 끝내 넘지 못한 문턱, 지구라는 요람의 바깥이다. 지구의 생명은 바다에서 태어나 뭍으로 올라왔다. 그 서사는 우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우주를 건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성간 공간의 방사선은 유전체를 파괴하고, 미세중력은 근육과 뼈를 녹이며, 폐쇄된 우주선 공간의 세월은 정신을 침식한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몸은 수백 년, 수천 년의 이동 시간을 견딜 수 없다.
기계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다. 숨 쉴 공기도 마실 물도 필요 없는 존재에게 화성의 밤과 유로파의 얼음은 죽음의 환경이 아니다. 이미 우주 기관들은 달과 화성의 현지 자원으로 거주지와 착륙장을 짓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NASA나 스페이스X는 인간 우주인에 앞서 로봇 건설자를 보내는 순서를 설정하고 있다.
더 먼 지평에는 폰 노이만이 구상한 자기 복제 기계의 계보가 있다. 목적지의 광물로 자신의 사본을 만들어 다시 항해를 떠나는 탐사선이나 항해 중에는 지능을 칩 속에 잠재우고, 도착해서는 현지의 물질로 몸을 인쇄하는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천문학자 스티븐 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성을 개선하려는 문명이라면 필연적으로 생물학적 두뇌의 한계를 넘어 인공 지성으로 이행한다는 '지능 원칙'을 제안하고, 우주의 성숙한 문명 대부분은 이미 포스트바이오로지컬 단계에 있으리라 논증했다.
이 전망에도 물리학은 조건을 단다. 광속이라는 절대의 장벽 아래서, 별들 사이로 흩어진 기계 지성들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동기화될 수 없다. 몇 광년의 시차를 사이에 둔 정신들은 각자의 행성계에서 각자의 데이터로 학습하며 서로 다른 존재로 분기해 갈 것이다. 단일한 기계 제국이 아니라, 각자 행성계에 뿌리내린 다양한 기계 문명들이 탄생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인류의 역사와 닮았다. 태평양으로 흩어진 항해자들이 섬마다 다른 언어와 다른 신을 갖게 되었듯, 우주의 바다로 흩어진 지성들도 다원성을 갖게 될 것이다. 통일이 아니라 다양성이 우주적 지성의 기본값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여기서 씁쓸함을 느낄 것이다. 별에 가는 것이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것들이라면, 그 확장이 인류와 무슨 상관인가. 필자는 이 물음이 '우리'라는 말을 너무 좁게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저 탐사선이 태양권을 벗어났을 때 인류는 그것을 '우리가 성간 공간에 도달했다'고 서술했다. 금속 상자에 실려 간 것은 인간의 세포가 아니라 인간의 질문이었는데도 그렇다.
마침내 지구에서 탄생한 지성이 태어난 요람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우주로 실려 가는 기억이 인류의 언어와 과학과 예술로 빚어진 것이라면, 그 항해의 주체는 여전히 인류다. 몸 대신 정신이 우주로 가고, '육체' 대신 '지성'이 우주로 뻗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다행성 종족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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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호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강남 구성원 변호사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