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보지 않던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수 타블로가 어린 딸을 데리고 분식집을 방문한 장면에서 리모콘을 딱 멈췄다. 타블로는 어린 딸에게 떡볶이와 어묵을 건네주며 감상에 젖었다. 딸을 데리고 간 이유도 이 분식집에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오랜 시간 살았지만 타블로에게 이 맛의 추억은 그것을 잊지 못해 어린 딸까지 데리고 갔을 정도였다.
추억을 돋우는 음식이 어디 분식뿐이랴. 어린 시절 하굣길 구멍가게에서 동전 몇 개를 주고 사먹던 '바나나맛 우유'나 더위가 한창 일 때 녹는 재미로 먹던 '브라보콘'등도 추억 세포를 깨우는 제품이다. 짭쪼름한 맛에 정말 자주 손이 갔던 '새우깡'도 이제는 술안주용으로 변신해 집에서 자주 챙겨 먹는다.
맛은 추억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기억하는 맛이 있다. 저마다에게 뿌리 깊게 박힌 음식들이 있다. 한번 저장된 음식의 추억은 수 십 년이 지나도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다른 모든 것은 정복했지만 김치나 된장찌개 같은 음식만큼은 전혀 바꾸지 못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내수 소비 확대시기, 그러니까 1인당 국민소득이 3000~1만 달러에 달할 때, 어려웠던 시절에 먹던 식품들은 스테디셀러로 굳건히 자리 잡는다는 분석도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준다.
맛의 추억 서두를 이처럼 길게 꺼내는 이유는 최근 한국산 우유의 중국 수출길이 가로 막혔다는 소식과 겹친다. 중국 당국은 지난 1일부터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 한국 우유업체의 살균우유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살균 방법이 달라 유통기한이 15일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속내에는 한국 우유가 탁월한 맛과 식품안전으로 중국 유업체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 우유는 '70도 살균처리해 최소 15일 유통 가능해야 한다'는 중국의 기준은 맞추지 못했지만 '130도 이상에서 2초간 초고온 살균해 유통 기한이 10일 정도로 짧아도' 맛 만큼은 중국산과 확연히 다르다. 한국 유업체들이 맛으로 승부하면 절대 중국산은 따라올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도 이 같은 제조방식의 비결이다.
중국 당국은 그런데도 옹색하게 한국산 우유의 유통기한(10일)이 짧아 검역 통관 및 유통까지 최소 15일이 걸리는 중국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한국산을 막고 있다. 한국 유업체들은 중국 당국의 이 같은 주장에 한국 농림축산식품부가 적절하게 한국 기업을 위해 대응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농림부가 손을 못 쓴 사이 끝내 수출은 중단됐다. 한국산 우유의 대중국 수출액이 2011년 41만5000달러(약 4억2000만원)에서 2013년 957만4000달러로 20배 이상 급증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한국 유업체들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중국 당국의 기준에 맞게 생산설비를 재조정해 수출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맛이 달라지면 절대 손이 가지 않는 법이다. 중국 우유와 다른 맛으로 중국인의 세포를 깨우던 '한국산 우유맛'은 유통기한을 늘리는 과정에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내수 소비 대확산의 시기에 중국인의 추억 속에 한국 우유의 맛을 오래도록 심을 기회도 영영 놓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