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때와 180도 달라졌다"...새벽배송 체험에 몸 낮춘 쿠팡 대표

"청문회 때와 180도 달라졌다"...새벽배송 체험에 몸 낮춘 쿠팡 대표

유엄식 기자
2026.03.20 11:18

강경 이미지 버리고 유화 제스처...염태영 의원과 동행 후 "선진적 업무 여건 조성에 노력" 입장 밝혀
사태 수습 국면에 정부·정치권과 관계 회복 시도 해석

쿠팡 해롤드 로저스 대표와 염태영 의원이 배송체험에 앞서 택배물품 상차 등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쿠팡
쿠팡 해롤드 로저스 대표와 염태영 의원이 배송체험에 앞서 택배물품 상차 등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쿠팡

지난해 말 정보유출 사태 직후 실시한 국회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과 각을 세웠던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가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정보유출 사태가 수습 국면에 접어들자 그동안의 강경한 이미지를 버리고 유화 제스처를 보내며 정부와 정치권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로저스 대표는 20일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과 새벽배송 동행을 마친 직후 "앞으로도 안전하면서 선진적인 업무 여건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새벽배송 체험은 작년 12월 청문회에서 염 의원의 심야 배송 업무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에 로저스 대표가 "함께 배송하겠다"고 즉각 응하면서 성사됐다. 당시 정치권과 업계 일각에선 "의례적인 대답일 뿐, 현실화는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새벽배송 체험이 이뤄진 경기 성남의 쿠팡 야탑 배송캠프에 로저스 대표가 먼저 도착해 염 의원을 기다렸다. 로저스 대표는 염 의원에게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면서,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의원실과 이렇게 협력해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염 의원도 "같이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조율해 맞춰 고맙다"고 화답했다.

염 의원은 "(쿠팡이)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경제, 가족 등에 도움을 주는 것이 소중한 애국이라 생각한다"며 "(배송체험을 통해) 다른 택배기사분들 노동 조건, 현장 사정을 같이 느끼고 개선하는데 도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준비 체조, 배송 업무 교육, 택배 상차 등 작업을 마친 뒤 성남 야탑역 인근 아파트와 도촌동 주택가 배송에 나섰다. 유통·택배업계에서 정치권 인사 요청에 회사 대표가 같이 배송 물류 업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체험은 쿠팡 새벽배송 기사의 업무 루틴대로 진행했다. 두 사람은 프레시백을 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빌라 계단을 오르며 직접 배송했다. 이날 소화한 배송 물량은 평균 물량과 동일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배송을 마치면 다시 야탑 캠프에 복귀해 물건을 차량에 싣고 배송에 나가는 등 이날 오전 6시 30분까지 배송 작업을 했다.

두 사람은 각각 쿠팡친구(쿠팡 직고용 기사)와 별도 택배 차량을 이용해 서로 다른 구역에서 배송했다. 중간에 겹치는 이동 동선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배송을 마친 이후 로저스 대표와 염 의원은 성남시의 한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로저스 대표는 "고객을 위해 수고해주시는 배송인력을 포함해 쿠팡 사업장의 모든 근로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업무 여건 개선에 앞장서겠단 입장을 밝혔다. 앞서 로저스 대표는 이번 체험에 앞서 지난 12일 배송캠프를 찾아 새벽배송 현장을 점검하고 직접 배송하며 현장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뉴시스 김명년 기자가 15일 한국사진기자협회 2025년도 4분기 이달의 보도사진상 뉴스 부문에서 '동시통역기 싫다 화내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2025년 12월 30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연석 청문회에서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동시통역기 착용 요구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2026.01.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류현주
[서울=뉴시스] 뉴시스 김명년 기자가 15일 한국사진기자협회 2025년도 4분기 이달의 보도사진상 뉴스 부문에서 '동시통역기 싫다 화내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2025년 12월 30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연석 청문회에서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동시통역기 착용 요구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2026.01.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류현주

업계에서는 몸을 숙인 로저스 대표의 행보가 정부와 정치권에 던지는 유화 제스처란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24년 7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은 새벽에 쿠팡 남양주 캠프 현장점검을 시도했지만 입장을 못해 논란이 되는 등 갈등이 쌓였다. 하지만 이날 전격적으로 여당 의원과 배송체험에 나서면서 그동안 노동 이슈로 갈등이 쌓였던 정치권과의 소통에도 더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로저스는 지난해 11월 개인정보 유출 사태 수습 차원에서 '구원투수'로 쿠팡 임시대표직을 맡게 됐다. 하지만 12월 정보 유출 사태 청문회에서 동시통역기 대신 자체 통역사를 쓰겠다고 해서 논란이 되거나, 의원들의 질의에 "그만합시다"(enough)라는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등 '다혈질' 이미지가 쌓이기도 했다.

다만 그는 사태 수습 국면에 접어든 올해 초부터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왔다. 국회 위증 혐의로 진행한 경찰조사에서 "정부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고, 쿠팡 사내 임직원에 보내는 이메일에서 "자료 제출과 대면 인터뷰 등에 참여하는 동료 여러분께서 적극 임해주셔서 사태가 조속히 정리되도록 힘을 보태달라"며 임직원 협조를 당부했다.

아울러 지난 1월 '99원 PB 생리대'를 시작으로, 지방 과일·수산물 확대 등의 농어촌 상생, 전통시장 활성화 기획전 등도 '지방 균형 발전'을 강조하는 정부와 정치권, 소비자와 신뢰를 쌓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적반하장' '고자세' 이미지를 벗고, 쿠팡이 적극적으로 배송 현장부터 정부의 경제 안정화 대책에 부응하는 저자세 '현장경영' 행보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탈팡(쿠팡 유료 회원 탈퇴) 현상이 완화하면서 쿠팡의 이용자 수도 다시 늘어나는 분위기다.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최근 쿠팡의 주간 활성 이용자 수(WAU)는 정보 유출 사태 이후 2600만명대로 하락했다가 최근 2800만명 이상으로 정보유출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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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엄식 기자

머니투데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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