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금융업의 이익을 보는 시각

[기고]금융업의 이익을 보는 시각

이상묵 삼성화재 기획실장
2013.06.05 06:04

금융업의 당기순이익이 급감하고 있다. 금융업의 대표 격인 은행업의 금년 1분기 실적을 보면 당기순이익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전반적으로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업에서만 좋은 실적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딘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이익이 급감한 데에 경기외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의 이익이 급감한 것은 금융업에서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보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런 사회 분위기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08년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금융을 보는 시각이 장밋빛 일변도에서 의심과 경계의 눈이 더해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에 우리는 금융업이야말로 미래를 위해 육성해야할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생각했다. 월가에서 제조되는 복잡한 파생상품을 첨단금융상품으로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월가의 막대한 이익과 거액의 보수를 부러워했다.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어 보자고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의 생각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금융업의 이익은 기업과 소비자를 희생시켜 만들어지는 것이라거나 금융이 커지면 제조업이 위축된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금융인이 받는 거액의 보수는 국민경제를 담보로 벌이는 도박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금융회사가 내는 이익과 금융인이 받는 보수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에 사람들이 가졌던 금융에 대한 환상이 지나친 낙관론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과 같이 금융을 백안시하는 것도 문제다. 인류 경제사에 대변혁을 가져온 산업혁명은 금융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산업혁명의 태동기에 생겨나는 새로운 금융수요를 금융혁명이 뒷받침하지 못했다면 산업혁명은 불가능했다.

중세가 다 지나가도록 사람들은 금융업을 고리대금업으로 보았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신의 이름으로 금지했다. 중세의 그런 시각은 금융과 산업의 발전을 짓누르는 굴레로 작용했다. 산업혁명은 금융에 대한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면서 가능했다. 지금까지도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권에서는 여전히 산업이 정체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창조경제도 결국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창조금융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최근 우리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금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회사가 내는 이익을 '나쁜 이익'으로 보고 대출금리와 각종 수수료를 낮추라는 압박이 일상화되는 현실에서 창조금융에 필요한 생동감 넘치는 활력과 모험정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작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미국에서는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금융회사들이 빠르게 이익을 회복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당국은 월가에 포획되었다는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금융의 정상화를 위해 바람막이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의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금융의 빙하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박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세계금융은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다. 유대인이 세계 금융을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중세시대에 이교도인 유대인에게만 대금업을 허용했던 역사가 작용하고 있다. 천한 직업이라고 여겨 이교도에게만 허용했던 금융업이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유대인은 그 중심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우리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금융업에 대한 반감이 이와 유사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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