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여름 정부부처 장관들이 청와대 국무회의에 '휘들옷'을 맞춰 입고 나와 화제가 됐다. 격식을 중시하는 관가에서 정장 재킷은 커녕 넥타이도 매지 않고 반소매 셔츠를 바지 밖으로 빼입은 장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휘들옷은 일반 소재보다 체온을 2∼3도 낮춰주는 첨단소재로 만든 쿨비즈 의류를 말한다.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가 에너지 절약 대책의 일환으로 '휘들옷' 보급에 공을 들였다. 이날 장관들의 휘들옷 패션 회동 시나리오도 산업부의 작품이다.
올해는 환경부가 '쿨맵시'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다. 쿨맵시는 일본에서 유래한 패션용어 '쿨비즈'를 우리말로 바꾼 것으로 환경부가 지난 2009년 대국민 공모를 통해 만든 용어다.
환경부는 최근 각종 회의와 행사 때 '노타이', '반소매 셔츠' 등 쿨맵시 드레스코드를 지정해 알려주는 제도를 정착하자고 정부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등에 협조 요청을 하고 나섰다. 이달초엔 신세계백화점 등과 '쿨맵시 대중화' 캠페인도 벌였다.
휘들옷도, 쿨맵시도 시원한 옷차림으로 체온을 낮추고 나아가 냉방전력을 절약하자는 취지의 정부 캠페인이다. 예산을 들여 용어를 만들고 대국민 홍보를 펼치고 있지만 성과는 크지 않다. 지난해 각종 매스컴을 달궜던 '휘들옷'이라는 말이 올 여름엔 쏙 들어갔다. 장관을 비롯해 공무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휘들옷 패션은 관가에서 조차 사라졌다. 쿨맵시는 홍보가 부족해 용어 조차 낯설다.
각 부처의 정책 홍보를 위해 산업계에 협조를 강요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최근 백화점 3사가 정부 정책에 동참한다는 취지로 쿨비즈 기획전을 벌이고 있지만 소비자 반응은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무원들은 정책 성과를 만들고 싶겠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휘들옷이든, 쿨맵시든 용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원한 옷차림으로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국민들 사이엔 전력이 부족한 여름철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인식도 충분히 확산돼 있다. 매년 전력난에 허덕이면서 휘들옷, 쿨맵시 타령으로 절전만 강요하는 정부가 가장 큰 문제다.
장마가 길어진 덕분에 한동안 전력 비상 소식이 뜸했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오면 전력이 부족하다는 뉴스가 예고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전력 설비 예비율은 30∼40%선인데 비해 한국은 5∼6%선에서 허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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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1∼2곳만 가동을 멈춰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직전까지 가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전력 수급난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휘들옷이나 쿨맵시로는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낮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