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국어 가이드 확충 찬성하지만

[기자수첩] 중국어 가이드 확충 찬성하지만

이지혜 기자
2013.08.13 08:28

이달초 서울 경복궁에서 중국인 단체여행객 23명을 이끌고 고궁 설명을 하던 중국어 가이드 왕모씨가 전화 한 통을 받은 후 갑자기 사라졌다. 관광객들은 꼬박 1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가이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왕씨가 자취를 감춘 것은 '불법 가이드 합동점검반'이 단속에 나섰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15년 경력의 왕씨는 현장에서 베테랑 가이드로 통하지만, 실상은 '중국어 통역 안내원' 자격증이 없는 불법 가이드다.

여행업계에는 왕씨와 같은 무자격 중국어 가이드가 유독 많다. 올 상반기 기준 공인 자격증을 소지한 중국어 가이드 수는 4361명이지만 이중 실제 활동중인 가이드는 1000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이 283만명에 달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중국인 관광객 전문 여행사들은 여름 성수기엔 무자격자라도 중국어 능통자를 현장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이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어 그동안 강력한 불법가이드 단속을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역사.문화를 왜곡하거나 바가지 쇼핑을 강요하는 무자격 가이드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지난달 17일엔 중국어권 관광통역안내사를 연간 500명씩 늘려 오는 2015년까지 총 1500명을 확충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정한 관광교육을 성실히 이수하면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로 가이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가이드 실무와 동떨어진 관광법규, 관광학개론 등 2가지 과목도 시험과목에서 빼기로 했다.

중국어 가이드 수가 부족한 것은 회화에 능통한 응시자 대부분이 한국어로 시험을 치르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분석에 따른 조치다. 중국어 가이드 시험을 준비중인 한 이주여성은 "한글은 읽을 수 있지만 한글이 빼곡한 시험을 볼 실력은 갖추지 못했다"며 "자격증 따는걸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제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관광업계는 정부가 모처럼 현실적인 정책을 내놨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가이드 수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이드 자질 여부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 역사를 엉터리로 소개할 경우 국가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외국어 능력과 가이드 자질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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