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전력난도 기업 탓?

[우리가 보는 세상] 전력난도 기업 탓?

양영권 기자
2013.08.26 06:45

서울 지하철 종각역 6번 출구. 갑자기 시작된 장대비에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40대 중반의 회사원은 밖으로 나갈 생각을 차마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접이 우산을 쓴 채 빗속을 뚫고 들어왔다.

"이거 쓰세요." 학생은 회사원에게 다가가더니 쓰고 왔던 우산을 건넸다.

둘은 아는 사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뜻하지 못한 상황에 놀라다 못해 당황한 회사원. "학생은 어떻게 하려구요…"라고 묻는다.

"저는 지하철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으니 괜찮아요." 학생은 바지에 묻은 비를 툭툭 털어낸 뒤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장마가 한창이던 지난달 하순 어느 아침의 일이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것을 보니 여름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올 여름 훈훈했던 게 뭐가 있나 되뇌자니 우연히 목격한 지하철역의 장면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2013년 여름은 폭우와 폭염, 가뭄, 녹조, 적조 등 '인간 활동'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자연현상'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힘들었던 기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지나기 힘든 기간이었다. 잇따른 발전소 고장으로 전력난이 가중돼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온 가운데, '전력난의 주범' 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생산 차질까지 빚어가며 전기 사용량을 3∼15% 의무적으로 감축하고 비상발전기까지 돌려야 했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 가격이 kWh당 92.83원으로, 주택용 112.61원에 비해 낮고, 기업이 전력 수요의 53%를 차지한다는 이유로 비판은 높아갔다.

이같은 비판은 어디까지 타당할까. 많은 이들이 단순 비교로 가격 차이를 지적하지만, 다른 제반 비용까지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압을 사용하는 산업용은 기업이 철탑 건립, 선로부지 보상, 유지보수 비용을 자체 부담하기 때문에 한전의 공급 원가는 kWh당 98원에 그친다는 게 산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저압을 사용하는 주택용은 감압에 따른 손실분과 전신주 유지 등 송배전 비용이 있기 때문에 원가가 124원으로 올라간다. 원가를 감안하면 산업용 가격이 결코 싼 것도, 주택용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업용은 삼성전자와 같이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쓰는 전기인만큼 가격이 낮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이건희 회장과 같은 돈 많은 사람이 가정에서 쓰는 전기가 주택용이니까 주택용 가격도 올려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할 것이다.

기업의 전기 사용이 과다하다는 점 역시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지난해 월별 최대 전력수요는 5월 6102만9000kW에서 12월 7598만7000kW까지 편차가 크다. 12월에 비해 5월의 최대 전력 수요가 20% 가까이 적다. 산업용 수요가 연중 거의 일정하다는 사실을 알면 여름철, 겨울철 최대 전력 수요가 높아지는 이유가 주택과 사무실의 냉난방 수요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해마다 가중되는 전력난에 화가 날만 하지만 기업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한번 더 생각해볼 일이다. 이는 휴가 때 고속도로에 나왔다가 길이 막히자 옆을 지나가는 덩치 큰 화물차들에게 화풀이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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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기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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