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백의의 천사.’ 우리가 아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다. 나이팅게일은 1850년대 크림전쟁 때 많은 영국군을 살렸다. 그가 남긴 업적은 신화 같다. 1855년 스쿠타리 야전병원의 환자사망률은 그가 본격 투입된 지 3개월만에 42%에서 2%로 떨어졌다.
이 현장을 때마침 특파원제도를 새로 도입한 영국 신문 〈더 타임즈〉가 생생하게 보도했다. 전국에서 성금이 쏟아졌다. 나이팅게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천사’의 이미지로 남게 됐다. 외모콤플렉스 때문에 사교모임만 생기면 아프다며 앓아 눕곤 했던 ‘못 생긴 대부호의 딸’의 이미지는 먼저 무덤에 들어간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사라졌다.
통계학자들이 아는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좀 다르다. 왕립 통계학회 회원인 그는 ‘다이어그램의 여왕’이다. ‘폴라에어리어차트’를 고안한 창시자다. 이 차트는 원형의 파이차트를 기본으로 하되 각 변수의 반지름과 색에 차이를 두어 한 사안에 각 변수가 미치는 영향을 한 눈에 간파하게 만든다.
그는 ‘영국군의 건강, 능률, 병원 운영에 관한 견해’라는 책에서 야전병원 사망요인을 설명하는 데에 폴라에어리어차트를 썼다. 통계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 차트를 보면 부상으로 죽는 군인보다 예방가능한 원인 즉 더러운 물과 위생관리 때문에 죽는 군인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각물의 힘은 셌다. 육군성의 보건 관계자와 왕실이 움직였다. 군 당국은 의료교육기관과 통계부서를 신설했다. 이후에도 그는 ‘병원에 대한 견해’를 비롯해 200여권의 서적과 보고서, 논문을 쏟아냈다.
그가 활동하던 40년 동안 영국의 간호사수는 2만8000명에서 6만4000명으로 늘었다. 인구통계조사의 직업목록에서 간호일은 ‘집안일’ 즉 무보수 봉사직에서 ‘의료’ 즉 전문 직업군으로 바뀌었다. ‘상스럽고 무례하고 지저분하고 성격 까칠한 나이 많은 여자’였던 간호사의 이미지가 ‘백의의 천사’로 바뀌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 머물렀다면 그는 단 한 명의 '백의의 천사'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통계와 다이어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함으로써 간호 시스템을 바꿨고, 전 세계에 수많은 '백의의 천사'를 만들어냈다.
'국가 보육 책임 체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보육 체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 정당, 전문가, 보육현장의 이해관계자들이 제각각 쏟아내는 의견 속에서 정확한 문제 분석, 누구나 딱 보면 이해할 만한 해석과 대안은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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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혹은 지자체의 재정 책임자들은 '무상보육 재정을 누가 더 낼 지',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지'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한다. 아동학대 어린이집에 대한 보도를 보는 부모들은 '믿을 만한 어린이집'을 늘릴 대책이 더 급하다고 한다. 월 평균 112만 원을 받고 하루 10시간 일한다는 보육교사나 보육교사를 꿈꾸는 취업준비생들은 '인간적 근무여건이 갖춰져야 보육의 질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간병, 요양 등 예전엔 '집안일'로 여겨졌던 분야 역시 사회서비스 분야로 들어오면서 같은 논란을 겪고 있다. 피할 수 없다. 논란도 사회 변화 과정의 일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만한 판단의 기준, 즉 정확한 통계와 문제 분석이다. 그래야 사람들을 설득해 여론을 모을 수 있다. 대통령의 공약처럼 '집이 행복한 나라'로 가는 길이 있다면, 그 길목을 열 이는 나이팅게일처럼 사명감 높고 설득력 있는 '다이어그램의 여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