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간의 뉴욕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2년이라는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에 미국과 미국인의 삶을 평가한다는 게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일 수 있겠지만 기자가 느낀 점은 '초강대국 미국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도 미국 경제는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고, 뉴욕증시는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 5만7000달러'로 한국과 비교해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뉴스가 미국 언론의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빈부격차에 더해 흑백갈등마저 다시 심화되고 있다.
기자가 살았던 뉴저지 버겐카운티 크레스킬은 뉴욕 맨해튼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고, 입지 조건과 학군이 좋아 미국의 대표적인 중산층이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 알게 된 이웃집 아저씨 벤슨씨는 기자를 만날 때마다 웃으면서 '굿모닝, 하이'라고 인사를 건넨 사람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개를 산책시키고 주말이면 집 앞의 잔디를 깎는 그와 우연한 기회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잔디 깎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잔디 깎고 눈 치우는 게 참 지겹고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다. 잔디 깎고 눈 치우는 일을 돈을 주고 업체에 맡기고 싶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접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 드라마에서 낭만적으로 봤던 미국인들의 자기 집 잔디 깎는 모습이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우리가 미친 전세값과 대출 이자에 힘들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도시민들도 모기지론 이자나 해마다 급등하는 월세값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저지 크레스킬의 경우 방 3개짜리 45만~50만달러 집의 월세가 대부분 3000달러를 넘는다. 연 단위로 환산하면 연간 임대료가 집값의 7.5%나 되는 것이다.
한국 직장인이 연말정산 세금폭탄에 분노를 표출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미국 직장인들도 매년 늘어나는 세금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인 일명 오바마케어에 대해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반대했던 것도 결국 자신들의 세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경찰의 교통법규 위반 벌금 부과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벼운 교통법규 위반의 경우 경찰이 구두 경고만 하고 운전자를 보냈으나, 요즘은 경찰이 사소한 위반 하나도 봐주지 않고 딱지를 뗀다. 상당수 주정부의 재정적자가 심해지자 교통법규 위반 적발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교통법규 위반 시 물어야 하는 벌금을 많이 매겨 재정적자를 메우겠다는 계산 때문이다. 뉴저지주의 경우 공개적으로 올해 교통법규 위반 벌금을 지난해보다 10%이상 더 거둬들이겠다고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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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소개한 사례는 미국인들의 삶 중 단면에 불과한 것이지만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인들의 삶도 우리 못지않게 점점 팍팍해 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팍팍한 삶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려 한다는 것'과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것', '노후에 대한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 하다는 것' 등이다. 이는 복지와 사회 안정망을 비교적 잘 갖춘 덕분일 것이다.
또 하나 미국에 대해 부러운 것은 조상을 잘 만났다는 점이다. 1931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을 정도로 훌륭한 조상을 만난 게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18일)부터 설 연휴다. 지금 삶이 팍팍할지라도 우리 조상들을 기리면서 후손을 위해 우리가 물려줄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한번 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