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의 전제가 있다면, 두 형제가 아닌 세 형제의 둘째라야 한다. 시청률 7%대의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tvN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혜리(성덕선)는 세 형제의 둘째다. 공부 잘하지만 독선적인 언니와 우유부단한 막내 사이에 낀 둘째다.
세 형제 중 둘째의 ‘모태신앙’은 악담의 연속이다. 못생긴 얼굴로 태어난 모습을 ‘씹다 만 수제비’ 같았다는 식으로 조롱하거나, 남 얘기하듯 병으로 죽을 뻔해 포기하려다 제힘으로 살아났다는 기적의 묘사들이 둘째를 대하는 전통적 방식이었다.
물론 이 땅의 모든 둘째가 악담의 그늘에 묻혀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전후로 가부장적 제도가 여전히 ‘먹히던’ 시절, 경제 여건이 제법 빠듯한 시절의 둘째는 애매한 서열만큼이나 가장 무시 받기 좋은 대상이었다.
이 무시가 쌓이고 쌓인 둘째의 설움이 지난주 방송에서 보기 좋게 폭발했다. “내가 만만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사람이야? 왜 나만 계란후라이 안해줘? 왜 노을이만 월드콘 사줘? 왜 나만 덕선이냐고. 언니는 보라고, 동생은 노을인데.”
혜리는 그러나 둘째들이 흔히 그렇듯, 새까맣게 설움을 잊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힘든 설거지나 심부름에서 가장 만만하게 호출할 수 있고, 호출할 수밖에 없는 이름, 둘째. 언니라는 독재의 그늘에 반항하고, 동생이라는 약자를 배려하는 이 두가지 극과 극의 기질을 본능적으로 ‘습득’한 둘째가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가장 ‘적응력’이 좋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좀 더 얘기를 확장하면 2015년 40대 어른들은 전체 사회구조에서 ‘둘째’에 해당한다. 개발도상국 처지에서 제 몸 하나는 건사해야 한다는 경제적 ‘자립정신’(‘위’의 영향)과 막 시작된 민주화 열풍이라는 정치적 기류에 영향받은 ‘자유와 평등 정신’(‘아래’로 전파)이 묘하게 섞이고 인지된 ‘낀’ 세대이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저항과 아래로의 배려가 동시에 쌓인 사회적 허리의 40대를 ‘영포티’(Young forty)라고 부른다. 제멋대로 살 줄 알면서 꽉 막히지 않은 젊은 사고의 유연성을 일컫는 표현인 셈이다. 혜리처럼 90년대 X세대로 불리며 시대를 앞서갔던 20대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포티로 발돋움했다.
영포티는 1970~74년 중심으로 그 앞뒤 연령대까지 포함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40대가 851만 명이다. 장래 인구 수치를 추산해 40대로 진입할 1975~79년까지 포함하면 1000만 명이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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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연령대별 소득도 가장 많고 소비력 또한 가장 높다. 정치적으로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쟁을 초월한다. 이들에겐 합리와 실용, 감성과 낭만이 더 중요하다.
‘특공대’(특별히 공부도 못하는 대가리)란 별명을 지닌 혜리는 수학 문제는 못 풀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 문제에는 손에 손잡고 갈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굳세게 지켜나간다. 그건 후천적으로 익힌 위·아래의 부대낌에서 얻은 선물일지 모른다. 건강한 사회에 대한 작은 기대를 영포티에게 거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