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60세에서 65세로 늦추기로 한 것은 고갈을 걱정한 고육지책이다.
이 때문에 가입자들은 그만큼 늘어난 소득 공백기를 어떻게 버틸지 고심하게 됐다. 그런 마당에 ‘국민연금을 복지재원으로 쓰자’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국민연금 가입자가 아니란 사실이다.
‘국민연금을 복지재원으로 쓴다’는 발상은 2013년 초 박근혜정부가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먼저 했다. 국민연금을 기초연금 재원으로 쓰자고 했다가 반대여론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된 것.
이 방안을 제안한 고용복지 분과는 최성재 간사, 안종범 위원, 안상훈 위원 등 교수 출신들이었다.
최성재 간사는 서울대 교수를 지내다 정년 퇴직한 공무원연금의 수혜자였다. 지금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고 있는 안종범 위원은 성균관대 교수 출신으로 사학연금 가입자였다.
안상훈 위원은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는데,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도 있고 서울대가 법인화 된 이후 사학연금으로 갈아탔을 수 있으나 어찌 됐든 국민연금과는 무관하다.
‘국민연금을 복지재원으로 쓰면 된다’는 논리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이어 받았다. 10년간 매년 10조원씩 총100조원의 국민연금을 임대주택과 보육시설 등에 투자하는 게 이 당의 총선공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 방안 토론회’를 개최해 공론화를 꾀했는데, 토론자로 나선 이들 대다수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아니었다.
“국민연금의 재무적 수익률도 중시해야 하지만, 소셜 리턴(social return)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사학연금 가입자다. ‘국민연금으로 공공임대주택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던 정성훈 대구가톨릭대 교수도 사학연금 가입자다.
토론회 축사에서 ‘국민연금을 보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국민연금과 인연이 있던 시기는 국민은행 이사장을 했던 6개월뿐인 걸로 추정된다.
김 대표는 1973년~1988년까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였으므로 사학연금 가입자였을 테고, 보건사회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비서관을 지낼 때는 공무원연금 가입자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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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12대, 14대,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 대표는 국회의원 연금의 수혜대상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연금은 2013년 8월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 개정으로 19대 국회의원부터는 어떤 경우에도 못 받지만 18대까지 전직 국회의원 중 2013년 말 기준 65세가 넘은 경우에 한해 연금을 준다. 김 대표는 그해에 73세였다.
또 다른 야당인 국민의당은 1호 법안이자 총선공약으로 ‘컴백-홈법’을 제시했는데, ‘청년희망임대주택을 국민연금의 재원으로 조성한다’는 게 핵심이다.
지난 2월 18일 이 내용을 법안으로 대표 발의한 이는 장병완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이다. 장의장은 2008년 2월 기획예산처 장관을 물러날 때까지 공무원연금가입자였다. 이후 호남대 총장일 때는 사학연금가입자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열거한 인물들의 면면에서 드러나듯 국민연금과 상관 없는 이들이 ‘보험료를 낸 사람이 혜택을 받는다’는 사회보험의 원리에 어긋나는 일을 벌이고 있다.
공공투자나 임대주택 건설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거나, 수익률이 높다면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자신들의 연금을 먼저 재원으로 활용하면 될 일이다.
내 몫의 연금은 챙겨 두고 남의 국민연금으로 선거 때마다 선심 쓰듯 하는 것, 그게 서민이나 청년들을 위한 복지이거나 사회적 정의는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