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40년..함께 해나가는 변화

세종문화회관 40년..함께 해나가는 변화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
2017.12.27 06:31

[기고]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

1978년 4월 세종문화회관이 문을 열었다. 40여 년 전이다. 당시의 예술 지형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세종문화회관 이전에 서울에 본격적인 공연장으로는 국립극장이 거의 유일했다. 국립극장이 지금의 자리에 자리를 잡은 것이 1973년이다. 우리나라 예술정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된 것이 1972년이고 그 법에 따라 문예진흥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신)이 설립된 것이 1973년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에 해당하는 시민회관은 1972년 12월 화재로 전소된 바 있다. 참사를 딛고 5년 반만에 그 자리에 이름을 바꿔 새로 문을 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그야말로 ‘그랑 프로제(Grand Projet)'였다. 서울의 중심이며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예술 공간을 마련한 것 자체가 담대했다. 시민회관을 지었던 시절에도 그랬다. 국가적 사업일 수밖에 없었다. 직접 대통령이 설계도를 검토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세종문화회관은 대극장이 4200석에 이르는 매머드 문화공간이었다.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와 구성이었다. 개관 직후 80일 동안 이어진 개관기념예술제도 전례 없는 예술이벤트였다. 뉴욕필하모닉, 필라델피아교향악단, NHK 교향악단, 이탈리아 팔마오페라단, 오스트리아 국립오페라단, 영국 로열발레단, 빈소년합창단 등 해외 예술단만으로도 이전에 없던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단숨에 세종문화회관은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중요한 사례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운영주체는 서울시 직영체제에서 재단법인으로 바뀌었다. 소속 예술단 중 가장 오래된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별도 법인으로 새 살림을 차렸다. 그러고도 9개의 예술단이 남았다. 공간구성도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극장이 생겼다. 지금도 건물 지하에 블랙박스 소극장을 하나 짓고 있다. 컨벤션이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었고 전시장이 대폭 늘어났다. 예술단이 상주하는 공간은 계속 증축되었고 레스토랑 등 식음료 서비스는 강화되었다.

세종문화회관을 둘러싼 환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부문이 그렇듯이 압축적 변화의 한가운데를 지나왔다. 예술동네나 개별 예술공간도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사회, 문화, 경제, 산업, 교육 등 우리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겹쳐진다. 예술시장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흘러왔다. 문화예술부문도 폭발하는 수요와 공급으로 지형 전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예술공간에 대한 기대와 요구 자체가 이전과 달라졌다. 지난 30-40년간 우리가 겪은 변화는 이전의 그 어떤 시기에서도, 다른 어느 나라의 예에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변화의 도도함은 지난해 겨울부터 지난 봄까지 이어진 광화문 촛불집회까지 닿는다.

세종문화회관은 이런 세월의 누적 위에 서 있다. 한 개의 예술공간 40년 역사라 치기에는 너무 많은 기억과 감성이 쌓여 있는 곳이다. 이 예술공간을 거쳐간 예술가와 스태프만이 아니다. 시민들도 한 몫 한다. 세종문화회관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시민들이 기억의 주인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서울 미래 유산’으로 선정된 이유이다. 세종문화회관의 변화는 진행행이다. 2018년은 또 다른 페이지의 시작이 될 것 같다. 변화는 크면 클수록 함께 해나가야 한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