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할 정치가 지난 12월8일 청와대의 지시와 여당의 무리한 날치기 통과로 모든 것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유야 어디에 있건 통렬하게 반성하면서 ‘싸우는 국회’는 올해에 묻고 내년부터는 제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국회에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특히 야당이 이런 자세를 갖고 있는데 청와대와 여당이 또다시 싸울 빌미를 제공하는 그런 정치가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2020년 12월,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 얘기로 들린다.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힘없는 야당 국민의힘의 푸념같다. 그러나 이 얘기는 정확히 10년 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2010년 12월31일 당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현 국정원장)는 최고위 발언을 통해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새해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고 비판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강조했다. 이때 한나라당 의석수는 171석. 민주당은 86석에 불과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2011년도 예산안과 각종 법안을 힘으로 밀어부쳐 통과시키자 ‘독재정권’, ‘의회폭거’라며 이명박정부를 비판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174석의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비롯해 ‘경제 3법’ 등 주요 법안을 본회의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여야 간 첨예한 쟁점 대립으로 논란이 많은 법안들이지만,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103석에 불과한 국민의힘은 여당의 독주를 지켜봐야만 봤다. 국민의힘은 10년전 민주당으로부터 들었던 ‘독재정권’, ‘의회폭거’를 민주당을 향해 외치며, 문재인정부를 비판했다. 대한민국 의회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다. 의회정치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가의 최고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골격이다. 의회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공통 의견이다.
10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 의회정치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행태만 보면 오히려 퇴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우리 의회정치는 여야 간 또 진보와 보수 진영 간 대립과 반목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자기 진영의 얘기만 듣고 상대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10년전 거대 의석을 자랑했던 국민의힘이 힘없이 쪼그라든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행태는 똑같았다. 상대 당보다 의석을 많이 갖기만 하면 날치기, 단독처리, 상임위원회 무시 등 협의하지 않고 독주하는 모습을 되풀이했다.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면서 의회정치는 사라졌다.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6개월 동안 계속 그랬다. 민주당은 의석수만 믿고 밀고 나갔다. 분명 상대 정당들이 있음에도 협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민의힘은 무능력했다. 대안도 없었다. 약자 코스프레를 통해 읍소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두 정당 모두 지지층만 바라보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린 탓이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정치혐오가 더 커졌다”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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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여야가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머리를 맞대야한다. 각 진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생’, ‘일자리’, ‘인구감소’ 등 공통의 문제부터 다루면 된다. 서로 간극이 크지 않는 정책이나 현안을 꺼내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 문제를 쉽게 풀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서로의 진영 논리를 강요해선 안된다.
특정 진영의 논리에 갇히면 결국 상대편으로부터 ‘독재’란 비판을 받는다. 다른 한쪽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기 진영의 논리만 내세우면 끝없는 갈등만 있을 뿐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여야 자리만 바꿔가며, 서로를 ‘독재정당’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코미디같은 '가짜 의회정치'는 이제 끝낼때가 됐다.
